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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Aug 14. 2021

엄마와 아베크족

여행의 의미

유명한 황리단길에 도착했다. 경주의 한 골목이 이렇게 힙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다니.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한 탓에 로스터리 동경이라는 카페에만 방문했다. 왜 이름이 동경이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고려시대 경주의 옛 이름이 동경이었구나. 카페의 인테리어는 아주 복합적이었다. 자개농, 전축, 양은 주전자, 쇠 쟁반 같은 소품이 군데군데 흩어진 와중에 에곤 쉴레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간과 공간,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는 이질적인 물건들이 서로 부딪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창밖을 바라보던 엄마가 “이 카페에는 아베크족들이 쌍쌍이 많이 들어오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베크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봐서 물어보니 “젊은 한쌍의 연인”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검색해보니 프랑스어. 어쩌다 우리 엄마 세대의 사람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엄마 얼굴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엄마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자취를 조용히 되새겨 본다.

80년대 소품과 1900년대 오스트리아 화가의 작품으로 치장한 로스터리 카페에 앉아, 90년대 팝송을 들으며 쌍쌍이 들어오는 아베크족을 바라보는 그 순간, 문득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여행은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누군가의 시간을 기억해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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