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을 듣다가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울컥할 때가 있다. 지난 토요일 아침 10시, 전포 크레타 (독립서점 및 모임 공간)에서 열린 '매일 실패지만 오늘도 씁니다'에서 이 감정을 느꼈다. 이정임 소설가의 강의와 수강생들의 글에 대한 합평으로 이어진 시간들. 이정임 소설가님이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시는 보석 같은 가르침들이 소중했다. 앞으로 이런 글쓰기 수업 많이 들어야지. 배워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었다.
글에 제목을 붙이세요. 글은 자신이 낳은 아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목 붙이기가 참 어려워요. 전체 내용을 말해주면서, 전부 말해주지 않는 제목이어야 해요. 중심 내용과 주제를 관통하면서 모든 걸 드러내지 않는 제목. 아주 어렵고 미묘한 지점입니다. 하지만 고민하셔야 해요.
문장의 길이가 아주 길어지는 걸 피하세요. 길게 쓰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너무 짧은 문장만 계속 연결하는 것도 별로예요. 문장의 호흡과 리듬감을 고려해 유려하게 쓰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초심자의 경우 짧게 쓰는 게 좋습니다. 초심자의 긴 문장은 지나친 사고의 연결 때문에 나와요. 그런 글은 읽기 거북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의 완급 조절을 위해 단문과 장문을 섞어서 씁니다. 빠르게 넘어갈 장면, 독자의 상상력과 추론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단문을, 길게 생각하며 작가의 의도대로 사유해야 하는 장면, 속도를 느리게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장문을 쓰죠. 하지만 초심자는 단문이 낫습니다.
모든 문장 부호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습니다. 쉼표는 독자에게 숨을 쉬라는 표지이기도 하고, 뒷부분에 집중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말 줄임표를 너무 많이 사용하시면 안 돼요. 읽으면서 힘이 빠지고 작가가 기운이 없어 보여요. 헤어짐을 주제로 글을 쓰는데 말 줄임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 보세요. 작가가 너무 처연하고 답답해 보입니다. 헤어짐도 담담하게, 산뜻하게,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글에서 글감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면 아까워도 과감하게 지워야 합니다. 지워도 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덜어내는 연습을 하세요.
글쓰기는 나에 대한 집중만으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충돌과 관계, 부대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나와 주파수가 통하는 독자와의 진실한 교감을 늘 고민하셔야 해요. 타자와 타인에 대한 진지한 염두와 고민이 글에 들어간다는 것과 읽는 사람 눈치를 보며 쓰는, 트렌드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가 중요합니다.
합평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게 되죠. 절대 그렇게 하지 마세요. 비교는 오로지 내가 전에 쓴 글과 이후에 쓴 글을 비교할 때만 하세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른 글이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잣대로 글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글에 대한 합의는 어렵잖아요. 이루어질 수 없을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만 생각하세요.
합평하다 보면 타인의 생활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걸 조심하시되,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용기를 냈음을 알아주세요. 다른 독자의 이해와 감상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세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어요. 글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오롯이 지는 거예요.
타인의 장점을 예민하게 발견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합평할 때 다음 6가지를 기억하세요.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는지, 글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지, 작가가 꼭 보여주려고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글에서 좋은 부분 공감되는 부분을 표시하시고, 궁금한 점 아쉬운 점도 찾으세요. 서로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평가한다고 생각하세요.
트위터나 인스타는 문장 단위의 글이 많죠. 지금의 현상과 분위기를 직설적 형태로 드러내요. 사진이 주고 문장이 보조합니다. 그런데 글은 달라요. 특히 수필은 일련의 서사가 담겨 있죠. sns에서는 순간의 빡침을 드러낸다면, 수필에서는 빡침의 원인과 정체를 서사로 표현해요. 사진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러나 글이 위주고 사진이 보조합니다. 차이점이에요.
수강생들한테 거지처럼 글감을 던졌는데 임금처럼 받아서 멋진 글을 진상할 때가 있어요. 감동하죠.
많이 읽어야 해요. 양적으로 많이 읽어도 좋지만, 질적으로 깊게 읽는 것도 좋아요. 좋은 글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세요. 왜 이 글이 좋았지? 그 이유를 생각하고 다시 글을 읽으며 그 부분을 발견해 보세요. 저는 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집을 읽고 나름의 이유를 생각한 뒤 해설가의 해설과 제 생각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요. 일치점, 다른 점, 더 깊은 해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소설의 독자는 엄격해요. 개연성 등을 심각하게 따지죠. 그런데 수필의 독자는 너그러워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진솔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수필은 의미화의 과정입니다. 나와 세계, 나와 타인의 관계를 억지로라도 짜내서 쓰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합니다.
설명문과 논설문에서 단락을 나눌 때는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는가를 고려하죠. 그런데 수필은 달라요. 시간과 공간의 전환, 생각의 전환 등등 방식이 다양해요. 쓰면서 감을 잡으셔야 합니다.
글에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노출되면 작가가 불성실하다고 생각돼요. 그 감정이 있게 된 상황을 통해 감정을 간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독자의 머릿속에 남아요. 나의 주관적 해석이 독자에게 가닿는 세련된 방식을 고민하세요.
제 글쓰기 수업에 중학생이 온 적 있어요. 그 학생이 쓴 글은 이렇게 시작해요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와 할머니 집은 늘 노란 빛깔의 햇빛이 비추고 그 빛을 따라 일렁거리는 먼지들과 언제부터 유지한 머리인지 모를 할머니의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등이다. 아, 아주아주 가끔 간장에 버무린 국수를 먹을 때가 있었는데 그 맛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어색하죠? 비문도 많죠. 맞춤법도 틀렸고요. 그런데 너무 좋지 않나요? 그립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안 썼는데 풍경이 그려지면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여실히 느껴지죠. 이런 글이 가슴에 남아요.
신춘문예 심사를 할 때 사실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요. 구성도 어색하고 뭔가 별로인데 가슴에 남는 글이 있어요. 탁월한 장점이 보이는 글을 저는 올려요.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리고 그 장점을 자신의 글에 녹여내 보세요. 내가 나아지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글을 봐야 해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경험에서 하나의 소재를 잡으세요.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는 독자 유무예요. 읽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죠. 그래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구체적인가? 이해할 수 있는가? 감정이 잘 드러나나? 의도한 메시지가 표현되었나? 한탄과 넋두리에 그치지 않아야 해요. 나를 모르는, 내가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에 대비해서 합평이 필요하죠. 낯선 세계에 내던져지기 전에 안전한 공동체에서 나와 독자에 대한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