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나에게는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고, 평범하지 않은 날이었다.
혁이씨에게 지금 소원이 있냐고 묻는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른 거 필요 없고 내 다리로, 내 발로, 잘 걷고 뛰는 거야!’이다.
나는 걸음이 다소 느리다.
느리게 걸으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나, 길에 있는 사람들, 들풀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생 때는 경보와 달리기로 반 대표로 뛰기도 했지만 상 때문인지 빠르게 걷고 뛰는 것은 나에게 어떤 책임이나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몸에 새겨진 것 같다.(는 핑계를 대본다.) 텐션을 높여야 하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굳이 빠르게 걷지 않는다.
혁이씨는 나보다 항상 몇 보 앞서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걷다’ 라기보다는 경보에 가까웠는데, 시장에서 장을 볼 때나, 동네에 산책을 할 때, 언제나 빨리 와- 여기 얼른 와서 이것 좀 봐 봐-!’하는 식이었다.
그런 혁이씨가 이제는 무언가 잡을 곳이 없으면 자유로이 걷지 못한다. 걷는다 해도 뒤뚱뒤뚱.
아무튼 나는 혁이씨의 보행장애의 발생과 동시에 걸을 수 있는 소중한 다리가 나에게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의 호루라기 신호가 없어도, 체중감량의 목적과 목표 없어도,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아니어도 뛸 수 있는 소중한 다리.
내 다리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저녁마다 나는 나의 일과를 마치고 가벼운 외출복을 걸치고 집 밖을 나선다.
지금 달릴 수 있는 두 다리와 ‘뛰고 싶으면 뛰어!’라는 생각의 일치가 움직임이 되는 것의 이렇게 새삼스러운 일이다. 뇌신경체계와 다리 신경의 아름다운 화합, 뛰면서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콧구멍이 있음에 감사하는 날들이다.
때로 간병과 직장 사이, 숨이 턱끝까지 막히는 날이 올 때에 달리기는 빛을 발한다.
내 숨이 턱턱 막히는 건지, 달리기로 숨이 막히는 건지 알 수 없는 경계에서 들숨과 날숨을 크게 내쉬면 어느새 또 살아갈만해지는 마음이 된다.
그나저나 이제 날이 추워져서 걱정이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익숙해지는 나의 얄팍한 러닝 본능이 추위에 움츠려들까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