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품정리와 우리집 뒷산 등산
어제는 몇년을 묵혔던 아버지의 유품정리를 했다.
조만간 혁이씨 혼자 지내던 집을 정리하고, 완전한 합가를 하려면 어느정도의 짐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따로 휴가가 없는 우리는 명절 연휴 중 하루를 짐정리하는데 쓰기로 했다.
오래지난 아버지의 부재였지만, 혁이씨와 나는 베란다에 그의 책장은 그대로 두고있었다.
그는 하나의 책장을 남기고 떠났는데, 오래된 원목으로 된 책장엔 손으로 훑으면 만져지는 매캐한 먼지가 끼어있었다.
그 곳엔 그가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살적에 어떻게 일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메모와 명함, 책들이 남아있었다.,
책들도 있었는데,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그 책 제목을 가진 것도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줄수 있을까 기대를 가지고 사진 않았을까.
‘시크릿’ 이라는 책을 보면서 이 책에 있는 비밀들을 스스로 되뇌일때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어느덧 서른을 넘긴 나는 책을 녹끈으로 묶으면서 그가 그시긴에 무슨 고민을 했기에 이 책을 샀을까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나도 책을 살 때, 그 당시에 공감이 가는 말이 있거나 위로가 되거나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고르기 때문이다.
녹끈으로 묶여서 차곡히 쌓인 책은 꽤나 무거웠다.
인생은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 걸까.
아무것도 모른채 ‘응애 -‘ 하고 태어나서, 사랑받고 미움받고 사랑하고 떠나보내며 수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고
소망하고 분투해도 결국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인데 말이다.
어제의 고된 짐정리로 다음날 아침, 몸이 굳어져버렸다.
남편은 다른일정으로 나가있었을터였고, 나는 혁이씨와 밥을 먹고서는 설거지를 하고 나홀로 뒷산에 등산을 떠났다.
나는 혼자 무언가를 하루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격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산에서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털어버리고싶었다.
나는 원래 등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어디에 가서 운동하기에는 부담스럽고, 2년 전 결혼하고 이 동네에 살게 되면서 집에서 5분거리에 산으로 통하는 둘레길이 접근성이 좋아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흙과 나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다가 나도모르는새 땀도 나서 운동이 되기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다.
산에 올라가는 등산객들은 갖춰진 아웃도어에 등산 지팡이 하나쯤은 소지하고서 뒷산을 올랐다.
동네 사는 30대 젊은이는 집에서 그냥 입던 옷 주워입고, 러닝화에, 한손에 커피를 들고 등산을 시작했다.
나도 20대 때에는 운동화가 아닌 단화를 신고도 잘 올라갔는데, 이제 운동화쯤은 필요한 나이가 됐다.
그래도 지팡이와 갖춰진 아웃도어를 겸비함은 좀 더 가뿐하게 등산을 하기 위한 뽀대?나는 의지이겠지.
오늘은 평소 주말보다 조금 더 올라가본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사람들과 나를 관찰해보기도 하고, 명절을 보내면서 몇일간 지나온 생각도 정리해본다.
나는 외동이라 혼자가 익숙하다. 혼자 등산을 한다던지 밥을 먹는다던지 책을 읽는다던지, 어딘가를 간다던지.
무언가를 혼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내 속도대로 갈 수 있어서 편하고, 하다가 힘들면서 잠시 멈출 수 있고, 내가 나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 셋이 좋은 점은 내가 갈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 같다.
나 혼자서라면 전도 안부치고 쉬어버리겠지만, 함께이기에 전도 부치고 나누어 먹고,
나혼자라면 오래 걸렸을 오래된 유품 정리도 조금은 더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할 수 있고,
나 혼자서람련 가다가 힘들어 멈추어 다시 돌아왔었을 등산코스도 함께이기에 고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제주도에서의 성산일출봉이 그랬다. 혼자 갔으면 가는길에 너무 힘들어서 턱끝까지 욕이 나올 것 같아 다시 내려왔겠지만,
남편과 함께였기에 올라가서 장관을 보고 정상의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등산 중간 중간에 얼마 전 지나간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꺾여진 나무들이 보였다.
꺾여진 나무였지만 다른 나무에 걸쳐져 완전히 쓰러지지 않은 나무들도 있었다.
나도 삶의 구비구비에 혼자 있었으면 바람에 꺾여버렸을 나무였을지 모른다. 좋은 사람들이 겼어 있었기에 바람에 상채기만 나고, 뿌리까지 뽑히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
그래도 때로는 혼자가 좋고 혼자만의 시간이 우리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산에 오르다가 우리집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새 얼른 집으로 와서 나와 놀아달라고 말하는 조금 전에 ‘혼자 있겠다’고 말한 나 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내리막길로 가려고 하던 차에 핫핑크 등산복을 입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하시면서 내려가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는 왜 지나가는 나에게, 그리고 다른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지긋한 연세에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갔다가 나 먼저 내려갑니다 ~ ‘하는 자신감과 여유겠지.
그리고 얼굴은 모르지만 오늘 같은 산에 올라온 등산 동지들을 향한 안부이겠지.
평소에 직장에서 아저씨들을 많이 상대하는 나는 이제 이런 할아버지나 아저씨들의 인사정도쯤은 약간 중저음의 목소리로 ‘예 안녕하세유!’하는 여유가 생겼다.
나도 나이들어서까지 등산할 수 있는 할머니로 늙고싶다. 핫핑크 할아버지처럼 멋져부리게 등산동지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은.. infj인 나로써는 좀 고민이 필요하다.
그 때는 내 손에도 지팡이 두 개 쯤은 필수겠지.
산 공기가 정말 좋다. 혼자 맡은 이 공기를 커다란 비닐에 넣어서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