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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6. 2022

쾌락독서 - 독서는 놀이다

문유석

총평: 문유석 판사의 책 수다 에세이. 가볍게 읽기 좋다. 책, 독서, 수다를 좋아하고 가볍게 읽히는 글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언제나 내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미든 지적 성장이든 그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두 가지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혼자만 읽지 말고 용기 내어 ‘책 수다’를 신나게 떨어야 더 많은 이들도 함께 읽게 된다는 것. 그걸 위해 기억 속의 책들을 찾아간다.

문유석 판사가 ‘기억 속의 책들’을 찾아가서 책과 독서에 대한 수다를 떠는 것이 이 책이다. 청소년 시절의 책, 자신 만의 책 선정 방법, 순정만화에 대한 추억, 하루키에 대한 생각 등등. 그중 판사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싫어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이 있다. 판사는 힘 빼고 느긋하게 쓴 글, 문단에 농담 하나 씩 나오는 글, 가볍고 솔직하게 쓴 글이 좋다고 자신의 취향을 말한다. 판사의 글 스타일도 이와 유사하다. 느긋하고, 위트 있고, 간결하다. 물론 자신의 본업이 판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직업과 관련된 내용도 나온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 (중략)… 그래서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법관에게는 무서운 책이다. 재판을 할 때마다 나중에 속죄해야 할 일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운 진실을 새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8년에 쓰였다. 문유석 판사는 2020년에 법복을 벗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tvN 드라마 <악마판사>의 각본을 문유석 판사가 썼다. 이제는 문유석 작가라고 해야 하겠다. 이 드라마의 작가의 말에서 위의 인용의 문장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요한 판사다. 악역들을 법적,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 처벌하는 다크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강요한 판사 옆에는 그런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지 의심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김가온 판사가 있다. 악역들은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없애야 한다는 강요한과 대비된다. 초법적 수단에 대해 망설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고 후회한다. 강요한 판사의 앞길을 막기도 한다. 하나 작가는 김가온 판사를 희망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저마다 아름다운 말들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성마른 분노를 전파하는 세상에서.​… 답답하고 힘들어도, 지름길은 없지 않을까. 망설이고, 돌아보고, 휩쓸리기보다 의심하고, 지나치다 싶을 때는 멈출 줄 알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그러면서도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선의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을 든든히 지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요한이 아니라 가온이 이 디스토피아 세상의 희망이다. - 드라마 <악마판사>, 작가의 말 중

수십 년 간 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범죄자들을 보다 보면 인간의 지리멸렬함이 뼛속 깊이 새겨질 만도 하다. 그런 경험은 인간에 대한 분노, 경멸 그리고 불신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경험을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상의 중심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이야 말로 디스토피아 세상의 희망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문유석 작가의 책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가 가진 인간에 대한 희망, 그 따듯함이 글에 녹아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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