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계=표상”이라는 것을 이전 글에서 알아보았고, “세계=의지”라는 것을 이번 글에서 알아보았다. 책의 제목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므로, 이 책을 다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76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나머지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가? 이 책에서 “왜” 세계가 표상인지와 의지인지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책의 대부분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것을 받아들인 후의 과정이다. 책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1권은 표상, 2권은 의지에 대해서 다룬다. 그렇다면 3권과 4권은 무엇인가?
3권은 예술에 대해서 다룬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과학에 포함되는 모든 학문으로는 표상, 표상과 표상 사이의 관계, 현상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 뒤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 의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예술이다. 다음 글에서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예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만약 2권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이 끝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는 의지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표상뿐이다. 우리는 끝까지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특정한 방법을 통해 사물 자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3권을 시작하는 다음의 긴 두 문단을 읽어보자. 인용 바로 밑에 요약을 해두었다.
우리는 제1권에서 세계를 단순한 표상으로, 주관에 대한 객관으로 설명했고, 제2권에서는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그 세계가 의지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 의지는 그 세계에서 표상의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뒤 우리는 이 인식에 따라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전체로든 부분적으로든 의지의 객관성이라 불렀다. 그에 따라 이 말은 객관, 즉 표상으로 된 의지를 뜻한다. 그런데 더구나 우리는 그 의지의 객관화에는 많지만 특정한 단계가 있어서, 그 단계에 따라 점차 분명함과 완성도를 더해 가며, 의지의 본질이 표상 속으로 들어가는, 즉 객관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억한다. 말하자면 이들 단계가 바로 특정한 종인 한에서, 또는 유기적이거나 무기적인 모든 자연적 물체의 근원적이고 불변하는 형식과 특성일 뿐 아니라 자연법칙에 따라 드러나는 보편적인 힘들인 한에서, 우리는 이미 이들 단계가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 이념*은 모두 무수한 개체와 개별적 사물에서 나타나고, 모상(模像)에 대해서는 원상(原象)의 관계를 갖는다.
여러 개체의 다수성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만, 개체의 생성 소멸은 인과성에 의해서만 표상되고, 이 모든 형식 속에서만 우리는 모든 유한성, 즉 모든 개체의 궁극적 원리이며, 개체 그 자체의 인식이 되는 표상의 보편적 형식인 근거율의 다양한 형태를 인식한다. 반면 이념은 그 원리와 관계하지 않으므로, 이념에는 다수성도 변전도 없다. 이념이 나타나는 개체는 수없이 많으며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지만, 이념은 동일한 이념으로서 언제까지나 변화하지 않으며, 근거율은 이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 근거율은 주관이 개체로서 인식하는 한 주관의 모든 인식이 따르는 형식이므로, 이념은 주관 자체의 인식 영역 밖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념이 인식의 대상이 되려면 인식 주관이 개별성을 중지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하고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이념=의지의 객관화의 여러 단계
첫 번째 문단을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세계는 표상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의지다. 의지가 객관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념이며, 이 이념들은 의지와 모상-원상의 관계를 갖는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기 쉽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이 이념들을 통해 의지에 대해 접근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두 번째 문단은 이런 말이다. 이념에 대해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식 주관(인간)이 개별성을 중지해야 한다. 개별성을 중지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주변의 시간과 공간, 논리성, 이유 등에 대해 사고하는 것은 표상과 표상의 관계를 추구할 뿐이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모두 직관에 바치고, 어떠한 대상으로 자기의식 전체를 채우면 그 대상의 표상이 아닌 그 대상 자체를 지각하지 않고 직관할 수 있다. 표상이나 표상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고 그 사물 자체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체, 자신의 의지를 잊고 ‘객관을 비추는 맑을 거울’로 존재해야 한다. 이 상태가 바로 개별성을 중지한 상태이며, 개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수한 인식 주관이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바로 ‘천재’이며, 그들이 이념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행위가 바로 예술이다.
… 과학을 공통의 이름으로 갖는 이 모든 것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근거율을 따르며, 이들 과학의 주제는 현상이고 그 현상의 법칙이며, 연관이며 거기서 생기는 관계들이다. 그런데 모든 관계 밖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홀로 원래 세계의 본질적인 것, 세계 현상의 참된 내용, 어떠한 변전에도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한 진리로 인식되는 것, 한마디로 말해, 사물 자체, 즉 의지의 직접적이고 적절한 사물 자체인 이념을 고찰하는 것은 어떤 인식 방식일까? 그것은 예술이며 천재의 작업이다.
예술은 순수 직관에 의해 파악된 영원한 이념, 즉 세계의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재현한다. 그리고 재현할 때의 소재에 따라 예술은 조형 예술이 되고, 시나 음악이 된다. 예술의 유일한 기원은 이념의 인식이고,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이 인식의 전달이다. 과학은 네 겹의 형태를 지닌 근거와 귀결의 끊임없고 변하기 쉬운 흐름에 따르면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받아, 결코 최종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또 완전한 만족을 얻지 못하여, 마치 우리가 구름이 지평선에 닿은 곳에 달려가도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예술은 어떤 경우에도 목적을 달성한다. 예술은 자신의 관조 대상을 세상만사의 흐름에서 끄집어내어 홀로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흐름에선 사라져 가는 작은 일부분인 이 개별적인 것이 예술에는 전체의 대표가 되고,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무한히 많은 것의 등가물이 된다. 따라서 예술은 이 개별적인 것의 곁에 머무르고, 시간의 수레바퀴는 예술을 정지시키며, 관계들은 예술에서 사라져 버린다. 본질적인 것, 이념만이 예술의 대상이다. 따라서 경험과 과학의 길이 바로 이 근거율을 따르는 고찰인 것과는 달리, 예술은 근거율과 무관한 사물의 고찰 방식이라 부를 수 있다.
의지와 이념을 직관하고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천재라고 하며, 그들의 천재성은 이념마저 직관할 수 있는 월등한 관조 능력, 인식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일반인에게는 그 능력이 미미하게 존재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향유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는 세계의 표면만 볼 수 있지만, 천재는 심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서 보이듯 쇼펜하우어는 대중을 혐오한다. 이 책에서 ‘과거나 현재를 불문하고 동시대의 대중이 언제나 잘못 생각하고 우둔하듯이, 후세의 대중도 언제나 마찬가지로 잘못 생각하고 우둔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이든과 같은 음악가도 모방을 일삼는다며 이 책에서 비난하는 것을 보면, 그가 생각하는 천재란 웬만큼 이름난 사람도 통과할 수 없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3권의 첫 부분에서 예술을 통해 근거율과 무관한 사물 자체를 고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아름다움’ 이란 예술작품을 통해 객관적 고찰을 쉽게 해 주거나 고찰에 쾌히 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론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술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하는 것이 3권의 나머지 내용이다. 그중 흥미로운 몇 가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1) 건축
건축술을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로 고찰한다면 우리에게 의지의 객관성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이념들 중 몇 개를 분명히 직관하려는 의도 외에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없다. … 중력과 강성의 투쟁이 아름다운 건축술의 유일한 미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가장 낮은 단계로 건축을 꼽는다. 왜냐하면 건축은 이념들 중 가장 낮은 단계들 중 하나인 중력과 강성에 대해 다루며, 단순히 예술적인 측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생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낮은 단계의 예술이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라고 말한다.
2) 언어예술
정신이 아름답고 사상이 풍부한 사람은 가능하다면 자신의 사상을 남에게 전달하여 이 세계에서 그가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을 완화하기 위해 애쓰면서, 언제나 아주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단순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우둔하고 혼란스러우며 괴팍한 사람은 무척 거드름 피우는 표정과 아주 애매한 말투로 자신을 위장해서, 사소하고 보잘것없으며 무미건조하거나 진부한 사상을 까다롭고 천박한 상투어로 은폐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름다움이라는 위엄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 부족함을 의복으로 보충하려고 야만적인 장신구, 금붙이, 깃털과 주름 장식, 커프스, 외투로 자신의 보잘것없고 추한 모습을 감추려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솔직하고 단순하게, 자신이 느낀 직관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여러 수사적인 표현이나 현란한 기술로 꾸미는 것에 대해서 경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시문학
… 서사시, 장편 소설, 비극에서는 정선된 여러 성격이 그러한 상황에 옮겨져서, 그 상황에서 그들의 모든 독특성이 전개되고 인간 마음의 깊이가 열리며, 특별하고 의미심장한 행위로 눈에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시문학은 독특하게도 극히 개인적인 성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념을 객관화한다.
다른 예술보다 시문학을 우위에 두는데, 그 이유는 이 예술이 다루는 이념이 가장 높은 단계의 이념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여러 시문학들 중에서 비극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꼽는다. 인간의 이념을 객관화하는 효과가 크며, 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극의 참된 의미는 칼데론이 단적으로 말하듯이, 주인공이 속죄하는 것은 그의 개별적인 죄가 아니라 원죄, 즉 현존 자체의 죄를 속죄한다는 보다 깊은 통찰에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그는 비극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베네치아의 상인>의 샤일록과 같은 ‘이례적이고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악의’에서 생겨난 비극이다.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 왕>과 같이 우연에 의한 비극이며, 많은 고대인의 비극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이자 그가 가장 높게 쳐주는 비극은 이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행은 인물들 상호 간의 단순한 입장을 통해, 즉 그들의 관계를 통해 초래된다. 그래서 엄청난 과오도 미증유의 우연도 극악무도한 성격도 필요하지 않고 도덕적인 면에서 평범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 흔히 생길 수 있는 사정에서 서로에게 맞섬으로써 어쩔 수 없이 상황에 의해 빤히 알면서도 커다란 재앙을 초래하는데, 이 경우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두 비극 - 악의와 운명 - 은 무시무시하고 끔찍하지만, 아주 먼 곳에서 우리를 위협하기에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유형의 비극은 이러한 불행이 언제라도 우리를 습격할 수 있다는 공포에 우리를 몰아넣기 때문에 가장 어렵고 효과적인 비극인 것이다.
4) 음악
세계는 의지의 구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듯이 음악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음악을 전적으로 올바르고도 완전히 세부적인 것까지 설명할 수 있다면, 즉 음악이 표현하는 것을 개념으로 상세히 재현할 수 있다면, 이것은 즉각 세계를 개념으로 충분히 재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되며, 또는 그 설명과 전적으로 같은 의미가 되는 것으로, 즉 참된 철학이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다른 예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다른 예술은 의지의 객관화의 여러 단계인 이념에 대해서 다루지만, 음악은 의지 그 자체인 본질을 다룬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언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삶의 꽃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표상으로서의 세계 전체가 의지의 가시성에 불과하다면 예술은 이 가시성의 명확화이고, 대상들을 더 순수하게 보여 주고 보다 잘 개관하며 통합시키는 요지경(Camera obscura)이며, 극 중의 극이고, 『햄릿』에서 무대 위의 무대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은 오직 고독한 천재, 예술가에게만 가능하다. 이처럼 예술을 높게 평가하는 그의 철학은 당대와 후대의 다양한 철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는 표상이며, 의지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을 통해 의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4 부 중 3부에 대한 내용이다. 4부에서는 이러한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가 표상이며 의지이며, 예술이야 말로 훌륭한 것임을 알게 된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떤 자기 인식에 도달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어떤 고뇌를 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부가 표상, 2부가 의지, 3부가 예술에 대해 다루었다면 4부는 윤리에 대해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