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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Sep 11. 2021

페스트 - 반항하고 맞서는 인간의 위대함

알베르 카뮈

- “...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외가 말했다. “끊임없는 패배지요.”
-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몇십 년간 가구나 속옷들 사이에서 잠자고 있을 수가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헌 종이 같은 것들 틈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일러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 가지고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 소설, <페스트>. 최근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보게 되었다. 특히 여러 작가들이 책에 대해 써놓은 글에 대해서   있는데, 장강명 작가가 페스트에 대해 이렇게 적어두었다. “20대에는  책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이라 여겼는데, 다시 읽으니  정도는 아닌  같다. 조금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여전한 울림.” 때문에 장강명 작가가 말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방인> <시지프 신화> 등을 읽어본  있다. 특히, 살림지식총서에서 나온 <알베르 카뮈>라는 유기환 교수님의   같은 카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 최적의 안내서다.  책으로 인해 카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의 사태와 카뮈에 대한 관심, 위의 사연 등이 겹쳐 <페스트> 읽게 되었다.

읽기  카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에 비추어 보았을 , 페스트라는  소설 또한 단순히 페스트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줄에서 진실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가지,  자살의 문제라고 했다. 그런 장엄한 문장을  문장으로 사용한 사람이 페스트 시대의 상황을 묘사한 책에 그친다고는 생각할  없었다. 묘사에 치중한 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미지적인 문제다. 읽다 보니, 눈에 띄는 부분이  군데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페스트=인생이라는 도식까지 말해준다. 앞의 내용들을 종합하면 ‘페스트=인생=부조리 것이다. 그렇다면 장강명 작가가 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있을 것이다.


서술자인 의사 ‘리외’의 모습을 통해서 그 답을 볼 수 있다. 리외는 페스트가 발생한 알제리의 도시 ‘오랑’의 의사다. 페스트가 발생한 것을 처음 눈치챈 사람 중 한 명이며, 대책을 세우고 치료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는 사람이다. 그런 그도, 페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는 패배>. 하지만, 끊임없이 패배를 당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시도한다는 것이다.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맞서 눈을 돌리지도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성실성>이야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답]으로 보인다.


타루라는 인물도 돋보인다. 그는 리외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나는 이 도시와 전염병을 알게 되기 훨씬 전부터 페스트로 고생한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는 판사인 아버지가 사형 판결을 내리는 것을 어릴 적 목격한다. 그 후, 그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생각한 페스트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페스트가 발병하기 전에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했고, 지금은 병을 고치기 위해 일한다. 그러한 타루의 태도 또한 <성실성>에 버금가는 고결한 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랑베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신문기자로, 페스트가 발생한 도시 ‘오랑’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발병 당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격리된다. 그는 고향에 여자 친구를 두고 왔고, 어떻게든 나가려고 한다. 경비원들을 매수하여 나가려고 시도하고, 몇 번의 실패 끝에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나가지 않고 페스트 구호대에 참여한다. 민음사 작품 해설에도 적혀 있는 말이지만, 이것이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듯싶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의 대책으로 자살, 희망, 반항 세 가지를 보여준다. 페스트라는 부조리에서는 자살은 도시를 탈출하는 것이다. 희망은 종교나 헛된 소문에 기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세 가지 중 카뮈가 생각하는 참된 해결책은 반항이다. 결코 도피하지 않으며, 현실을 목도하고, 묵묵히 그에 맞서는 것이다. 리외가 그랬고, 타루가 그랬고, 랑베르도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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