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화: 마지막날, 후일담

여행을 끝내며

by 최형주

이날 저녁 8시에 출국하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행이 끝이다. 마지막 날에는 공항 근처의 볼 거리들을 보기로 했다. 브런치로 어제 갔던 크럼앤코스터에 한 번 더 방문한 후 울루와뚜 사원을 구경하고, 그리고 프렌치 레스토랑 La brasserie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사이드워크라는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여행의 끝이 다가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9일째 여행을 하느라 지친 것인지 무언가 아침부터 기운이 꿀꿀했다. 브런치를 먹고 울루와뚜 사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각국의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나는 지혜에게 “그냥 보지 말고 나갈까?”라는 말을 건넸다. 나 딴에는 “사람이 참 많네.”라는 말을 농담조로 건넨 것이었다. 그러나 지혜에게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곳에 뭐 하러 왔냐?” 라는 불평과 빈정거림으로 들렸다. 당연히 지혜는 화가 났다. 그 후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긴 여행으로 지친 것은 지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날씨도 덥고 습하고, 어제부터는 음식이 안 맞았는지 배탈이 났는지 화장실에 계속 들락날락하고, 그래도 이제 마지막 날이니 힘내서 일정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의 빈정거림을 들은 것이다. 어떻게든 지혜의 기분을 푸려는 내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최후에 기댈 것은 시간 밖에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이 희석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내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인지 지혜에 닿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시간에 있었던 대화들과 행적을 기록하는 것 또한 기록자의 책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그런 시간들은 빨리 잊히는 것이 세계에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3배 더 강렬하게 기억한다. 이런 조건에서 뇌 속 긍정과 부정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는 필요 최소한으로 기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8시에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6시까지 공항에 가기로 했고, 그전 3시쯤에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짐바란 해변 근처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짐바란 해변은 발리의 명소 중 하나다. 해변가에는 바닷가를 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간이음식점들이 줄지어있다. 많은 여행자들은 그곳에 앉아 일몰을 보면서 조개, 새우, 생선요리를 즐긴다. 지혜와 나는 발리에 일주일 넘게 머무르면서 간이음식점에서 파는 맛에서 신선함보다는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체험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아기자기하고 예쁜 식당에서 정갈한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을 택했다. 발리의 프렌치 레스토랑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듯했다. 발리에 방문했지만 로컬 음식이나 향신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그렇지만 모처럼의 여행지에서 맥도날드는 가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말이다. 베벡 벵길이라는 발리 전통 오리요리를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요리, 생선요리 등을 먹고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이드워크 쇼핑몰에 들러 기념품이나 선물 등을 구매했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기다리며 생맥주를 한 잔 먹었다. 발리에서 먹은 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다.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비행기에서 내내 잠만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저녁에 곱도리탕을 시켜 먹었다. 그리운 고향의 맛이 나는 곱도리탕에 얹어진 하트 모양의 당근이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축복하는 듯했다.


후일담 1) 만약 다른 사람이 발리에 간다고 할 때


발리는 추천할 만한 여행지일까. 조금 망설여지는 점은 음식과 술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음식들은 맛은 있지만 그다지 베리에이션이 없다. 물가가 싸다고는 해도 관광객이 찾는 음식점은 그다지 싸지 않고, 로컬 음식점은 그다지 위생적이지 않다.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사실이지만 음식점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몇 번 목격했다. 주류에 부과되는 세율도 높아 주류 가격이 비싸 맥주 가격이 우리나라랑 비슷하거나 더 높은 지경이다. 맥주 말고는 단순한 몇 가지 칵테일뿐이며 비싸다. 그렇지만 발리는 훌륭한 여행지다. 서핑이나 스노클링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다. (2시간 서핑 강습이 만원 남짓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탁 트인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안가에서 두 시간만 이동하면 울창한 열대우림을 볼 수 있다. 폭포나 계곡, 원숭이 숲과 같은 자연경관과 사원이나 전통춤과 같은 이색적 체험도 할 수 있다.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 그렇지만 스테이크나 폭립과 같은 고기는 아주 싸다. 관광객 대상 가게들이 비싸다고는 해도 한국 기준에서는 아주 만족할 만한 가격이다.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도 있다. 누군가 발리에 간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키워드를 건네줄 것이다. 해양스포츠, 열대우림, 고기. 만약 이 키워드들이 마음에 든다면 발리를 추천한다.


후일담 2) 여행기를 쓰고 나서


3월 말의 8박 10일 동안의 경험을 글로 적는데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경험한 시간에 대비해 10배는 걸린 셈이다. 글자 수로 따지만 약 5만 자 가량이다.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한 화에 7천 자 넘게 길게 쓰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짧아져서 한 화에 3천 자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구성도 조잡하다. 결혼이나 여행에 관련된 내용들을 이것저것 넣고 싶었는데 끝날수록 점점 더 경험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길 잘 했다고 생각이 든다. 여행의 경험은 직후에는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상에 점점 희석된다. 그런 희석의 물결에 버티기 위해 사람들은 사진을 남기거나, 같이 여행한 사람들과 드문드문 기억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한다. 혹은 영상을 찍고 편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기도 한다. 나는 여행기를 쓰는 방법을 택했다. 이 여행기를 쓴 이상 나에게 이 발리 여행은 지혜와 나의 신혼여행이자, 여행기를 처음 쓴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 경험을 아로새기는 방법 중 가장 느리지만 매력적인 방법이 아닐까.

keyword
이전 09화9화: 서핑 강습과 발리 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