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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우붓 시내 돌아보기

우붓에서는 택시를 타고 태국음식을 먹자

by 최형주

조용하고 아늑했던 우붓 산속의 호텔을 벗어나, 시끌벅적한 우붓 시내로 나가는 날이다. 일어나서 미리 시켜둔 조식을 먹고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즐겼다, 짐을 다 챙기고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절경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울창한 야자수의 이국적인 모습과 숲 속의 향, 새와 벌레의 소리, 덥고 습한 공기, 그런 자연을 창이라는 필터 없이 온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 그 장소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는 개인 공간이라는 점이 우붓 산속에서의 경험을 더없이 특별하게 했다.

IMG_6027.JPEG 우붓 호텔에서 본 마지막 풍경

이러한 감상을 뒤로하고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우붓 시내까지 이동한다. 우붓 시내에는 왕궁이 있는데 지금도 왕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왕궁을 근처로 큰길이 있고, 숙소는 큰길에서 벗어나는 골목길에 있었다. 골목길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고타마’ 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고, 발리는 힌두교가 메인이지만 역시 불교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일까. 숙소는 3층에 있었는데 창밖으로는 우붓 시내의 풍경이 펼쳐졌다.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 사는 곳은 또 그 나름대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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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왕궁 근처에 있는 부 루스라는 음식점이었다. 음식점에 가면서 왕궁 앞을 지나쳤는데, 발리 전통 무용 퍼포먼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에브리 튜스데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어서, 마침 퍼포먼스를 하는 날에 온 걸까?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술임을 알게 되었다. 365일 하는 공연인데, 매일매일 포스터를 그날의 요일에 맞게 바꾸는 것이었다. 나처럼 순진한 여행자들이 포스터를 보고는, ‘오 마침 오늘 하는 날이네, 운이 좋은 걸. 꼭 보러 가야지’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수법인 것이다.

어딜 가도 무난하게 맛있는 사테


이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다행히 음식점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고, 우리가 다 먹었을 때쯤 비가 그쳤다. 돼지 사테(꼬치구이), 미고랭, 나시고랭, 폭립을 먹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이후의 일정에 대해 찾아보았다. 발리에 오기 전, 8박 일정 중에서 첫 4박의 일정만 구상했다. 우붓 시내에서의 숙소 또한 전날에 예약했고, 우붓에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다. 우붓에서 할 일을 두 가지로 추렸다. 이 날은 근처의 산책코스인 ‘짬푸안 릿지워크’에 가고, 내일은 원숭이숲에 가기로. 점심을 다 먹고 비도 그쳐 짬푸안 릿지워크로 향했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찻길에는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는 수많은 차들과 이륜차가 가득하다. 인도는 보도블록이 간간이 깨져있고 폭도 좁아 찻길의 옆으로 다녀야 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 지도를 보면서 가야 하는데, 차를 조심하면서 다녀야 하는 험한 도로사정 탓에 그러기도 어렵다. 이런 예민해지는 상황 속에서는 마음속에 답답함과 불만이 쌓이고, 종국에는 그 화를 서로에게 분출하게 된다. 이때가 그런 상황이었다.


지혜와 내가 싸우게 되는 패턴은 대체로 이렇다. 내가 타고난 무심함과 둔감함으로 지혜의 신경을 건드린다. 사소한 일이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면 지혜가 화를 낸다. 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갑자기 화를 낸다고 생각하고 어리둥절해하며,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해진다. 지혜는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상황이 악화된다. 물론 이 패턴이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보통은 내가 신경을 긁어도 지혜가 그러려니 하고 넘기거나, 혹은 짜증을 내기 전에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지혜가 화를 내면 내가 원인을 곧 파악하고 고치거나, 혹은 ‘그래, 쟤가 악의로 한 것은 아니니까’라며 지혜가 참는다. 그런데 다른 요인으로 인해, 예를 들면 같이 여행을 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반복된다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서 관대함이 사라진다거나 할 때, 앞서 말한 부정적인 패턴이 등장한다. 이때가 그랬다. 며칠 간의 여행으로 인한 피로와 험한 도로환경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었고, 냉랭함이 주위를 감돌았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별 수 있는가. 여기는 인도네시아 발리고, 신혼여행 중이고, 의지할 사람은 서로 밖에 없다. 다행히 릿지 워크는 길도 괜찮았고, 걸으며 보는 산 위의 경치도 좋았다. 길 끝에는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젤라토 두 개를 먹고, 발 마사지를 받으니 기분이 완전히 풀렸다. 대부분은 이렇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다투고 우울해지고 실망감이 들 때, 휴식을 취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99%는 해소된다. 아무리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화목할 수는 없다. 지혜와 나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같아질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 차이에서 오는 분쟁은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다툴 때마다, 이해가 안 되고 속상하고 우울해질 때마다, 세 가지를 명심하려 한다. 첫째, 휴식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괜찮아진다. 둘째, 우리는 대화와 행동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고 더 좋아질 수 있다. 마지막 셋째,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산책길 위 마을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호텔 1층의 수영장 앞의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하며 휴식을 취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길을 나섰다. 골목길을 걸어 다니며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걷다 보니 내일 가기로 한 태국 음식점이 근처에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먹은 태국 요리들이 발리에서 먹은 음식들 중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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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쯤에 갔는데 웨이팅이 있어서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본 놀라운 광경은 그렇게 웨이팅을 해서 기다린 어느 중국인 5~6명 팀이었다. 이 가게에는 플레이팅으로 유명한 굴 요리가 있는데, 그 그룹이 그 요리 하나만 시키고 둘러앉아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더니 곧바로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유명 가게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저런 고객들도 감수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를 바라보는 창문의 바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똠얌라멘, 그린카레, 새우 셰비체, 삼겹살 덮밥을 먹었다. 나는 코코넛과 고수가 이전까지는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마트에서 우비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고타마 거리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며 발리에서의 여유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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