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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인도네시아의 종교와 원숭이

내 인생을 완성할 조각

by 최형주

인도네시아는 인도의 88%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렇지만 발리는 주민들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는다. 이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본디 인도네시아 지역은 인도로부터 힌두교와 불교를 받아들여 두 종교를 기반으로 크고 작은 국가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 이슬람 기반 국가가 먼저 건국되었던 힌두교, 불교 기반 국가를 몰아낸다. 그때 발리 주변의 힌두교 승려와 왕족들이 발리로 피신을 오게 되고, 그 영향으로 발리는 지금까지도 9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 지역이 되었다. 발리 곳곳에서는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거리에는 힌두교 신들의 석상이 즐비하다. 비슈누나 시바 등 힌두교의 대표 신들과 신조 가루다, 코끼리 형상의 가네샤, 원숭이 신인 하누만 등 다양한 석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원들도 아주 많다. 이름이 붙여진 큰 사원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모두 사원이 있다. 대문을 열면 석상과 제단이 있는 형태의 집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발리의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꽃과 과자가 놓인 작은 나무 상자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이를 ‘차낭사리’라고 한다. 이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나쁜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이처럼 발리에서는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를 넘어 주민들의 생활 그 자체다. 걸어 다니고 일하고 자고 먹는 모든 장소에, 그 모든 방식에 힌두교가 스며들어 있다. 세계에서 힌두교가 주력 종교인 지역은 인도, 네팔, 그리고 발리뿐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 발리의 힌두교는 인도나 네팔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발리 힌두교’라고 부르며 기존 힌두교와 아예 다른 종교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발리가 유명한 관광지가 된 이유 중 하나도 이처럼 독특한 종교적 색채를 섬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먹이를 먹는 원숭이들

힌두교에서 가장 유명한 두 서사시는 <마하나바타>와 <라마야나>다. 이 중 <라마야나>는 ‘라마’라는 영웅의 일대기인데, 그의 오른팔이 바로 ‘하누만’이라는 원숭이다. 힌두교에서 아주 인기 있는 신이며, 발리에서는 원숭이들을 신성한 동물로 대접한다. 이전부터 원숭이 서식지에 사원을 만들어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으며 지금도 원숭이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다. 우붓 시내 근처에도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 숲이 있다. 이름 그대로 ‘몽키 포레스트 우붓‘. 우붓 시내에서 걸어서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이날 오전에 그곳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그늘진 숲 속이라 해도 정오가 가까워지면 걸어 다니기 힘들다는 것이 자명했기에, 아침에 나가서 점심 전에 다 보는 것을 계획했다.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다른 동물과의 접촉이 불가능한 현대 도시인의 입장에서 아침에 숲 속을 거닐면서 여러 사원들과 숲 속을 뛰어다니는 원숭이를 보는 것은 흥미롭고 이색적인 체험이다. 입장료는 약 오천 원 정도로 한 번쯤 가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원숭이를 어깨에 올리거나 품에 안는 등의 사진을 찍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곳곳에 옥수수를 가진 직원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에게 소정의 요금을 내면 옥수수를 미끼로 원숭이를 불러서 예쁜 사진이 나오도록 만들어준다. 분명 사육하고 있는 원숭이는 아니며 종교적인 의미로 보호되고 있는 서식지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원숭이들의 식비(고구마), 직원들의 월급이나 숲 보존비용 등이 충당되는 것이겠지. 지혜는 큰 원숭이들은 너무 사람처럼 보여서 적나라해서 민망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렇게 두 시간쯤 걷다가 나왔는데 점심시간이 아직 안 되어 근처의 베이커리로 향했다. ‘무슈 스푼’이라는 베이커리인데, 발리 내에 지점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보면 이름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가게였다. 치킨 코르동 블루라는 샌드위치를 과일주스와 함께 주문했다. 코르동 블루는 고기 속을 치즈로 채워서 굽거나 튀겨낸 요리다. 치즈돈가스의 맛과 유사해 맛있게 먹었다. 이후의 일정을 위한 검색을 하며 베이커리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다른 가게로 향했다. 폰독마두라는 폭립 전문점이었다. 발리에서 수없이 폭립을 먹었지만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달 짭짤한 소스와 부드러운 고기, 거기에 맥주와 칵테일.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한국의 절반 가격도 채 나오지 않는다. 도무지 실패할 수 없는 경험이다.

IMG_6517.JPG 삼발 소스 폭립과 공심채 요리

집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좀 쉬다가 다시 나와 고타마 거리에 있는 카페에 자리 잡았다. 발리의 카페(겸 바)들은 점심 이후 저녁 전인 시간에 해피 아워 할인을 하는 곳이 많다. 우붓 시내에는 칵테일 2잔=100K (10만 루피아, 약 만 원)이라고 적혀있는 팻말이 곳곳에 있다. 칵테일 두 잔과 간단한 안주를 시켜 자리에 앉는다. 지혜는 밀린 웹툰을 보고 추후 일정과 음식점을 탐색하며, 나는 그 옆에서 이 여행기의 기반이 되는 간단한 여행 기록을 남겼다. 어제의 태국 음식이 인상 깊어 저녁에 다시 태국 요리를 먹었다. 어제와는 다른 식당이었는데 마찬가지로 맛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밤에는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바에서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며 물 담배도 체험해 보았다. 그다지 취향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의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노랫소리와 알코올 그리고 약간의 니코틴을 함께 한 몽환적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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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떠나서 한국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 발리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이날의 저녁이 기억에 남는다. 라이브 공연 바가 아니라, 그전에 여행기를 쓰던 카페가.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과 발리인 그리고 개들이 누비는 골목길. 그 길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시켜 지혜와 각자 할 일을 하는 장면. 이 장면이 이상하게도 뇌리에 남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생각해 본다. 이런 장면들은,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내 이상향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 아닐까. 그날의 날씨나 기분, 음식과 같은 전반적인 상황이 나로 하여금 ‘아, 아름답다.’ 하는 인상을 남긴다. 그런 조건들이 꼭 발리에서만, 그 여행지에서만 충족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여행객은 보다 다양한 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여러 조건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모은다면 내 이상향의 청사진을 완성할 수 있겠지. 쉽게 말해 여행을 하다 보면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내 인생을 완성할 조각 하나를 발리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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