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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서핑 강습과 발리 도그

by 최형주

우붓을 떠나 쿠타로 돌아온 것은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두 클래스를 듣기 위해서였다. 오전에는 서핑 수업, 오후에는 발리 개 협회에서 주최하는 모임을 예약했다.


발리는 초보자가 서핑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한국의 해안가는 구불구불하고 바위가 많아 파도가 일직선으로 오지 않고 이리저리 굽이치는데, 발리는 해안선이 직선으로 길게 쭉 뻗어있고 장애물도 없어 파도가 정직하게 오기 때문이다. 둘 다 서핑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처음 체험해 보기 최적의 장소다. 이를 위해서 숙소도 바닷가 바로 앞으로 예약했다. 아침을 바로 앞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고 강습을 받으러 향했다. 서핑은 생각보다 할 만했다. 바닷물만 들이키다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 일단 해변가에서 자세를 배운다. 간단하게 세 동작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서핑보드에 눕는다. 두 번째, 무릎을 배 쪽으로 끌어올려 일어날 준비를 한다. 세 번째, 일어나서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바다에서 파도에 맞춰서 자세를 차례대로 하면 끝이다. 말로는 참 쉽지만 당연히 아주 어렵다. 제대로 눕는 것도 어렵고, 언제 일어날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어나서 균형을 잡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난도가 높다. 거기다 어떤 위치에서 누워야 할지 언제 일어나야 할지 어떤 파도가 좋은지 알 리가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서핑 강사가 있다. 초보자 대상 서핑 수업의 목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서핑 무지렁이들에게 ‘서핑할만한데?’라는 감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노하우들을 강사는 가지고 있다. 먼저 강사가 수강생들과 같이 바다에 들어간다. 먼저 들어가서 파도를 체크하고 우리들을 부른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얌전히 누워서 기다린다. 강사가 알맞은 방향과 타이밍에 서핑보드를 밀어주며 언제 일어날 지도 알려준다. 앞서 배운 세 가지 동작을 순서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두 시간의 수업 끝에, 한두 번 정도 일어나서 파도를 타며 해안가까지 미끄러져가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며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것뿐인데 어렵고 지친다. 무릎 위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고 서핑을 했는데, 서핑보드에 올라타느라 손바닥과 무릎이 쓸려서 다쳤다. 나중에 찾아보니 서핑을 할 때는 긴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하더라. 다음에 한다면 더 편하고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사진을 찍지 못한 것 정도. 대신이라 하긴 뭣하지만 모래사장에서 자고 있는 강아지의 사진을 찍었다. 내 신발을 흙 속에 파묻고는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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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를 마치고 근처의 크럼 앤 코스터라는 브런치 카페로 향한다. 에그 베네딕트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먹었다. 호주, 유럽, 미국 등 잘 사는 나라의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의 음식은 한국 물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대신 서비스와 맛도 한국만큼 된다. 어딜 가든 30분 이상 기다려야 음식이 나왔는데 여기는 맛있고 금방 나온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물린 찰나에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발리 개 협회의 모임에 참여했다. 뭉구 비치라는 쿠타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간 바닷가에서 모임이 열렸다.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라 한적하고 경치도 좋다. 발리 개 협회는 국가 공인 단체는 아닌 것 같았고, 민간으로 활동하면서 발리의 개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다. 발리에는 개들이 사람(50만)보다 2배(80-90만)쯤 많다. 발리 힌두교의 교리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개를 기른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동물 대상 의료는 부족해 광견병 주사를 맞히는 것이 나라에서 케어하는 전부다. 발리 개 협회에서는 피부병이 있는 개들을 치료하거나 주인 없는 강아지들을 보살피는 등 나라가 하지 못하는 활동을 한다. 내가 참여한 이 모임은 약간의 참가비를 내서 협회에 약간의 기부를 하고 강아지들과 함께 노는 모임이었다. 대여섯 명쯤 되는 참가자들이 해변가에 작게 빙 둘러서 앉고, 그 중간에 몇 주쯤 되는 강아지들을 풀어놓았다. 붙임성이 좋은 강아지들만 데려왔는지, 아니면 발리 강아지들은 대체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들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물어뜯고 핥으며 돌아다녔다. 지혜와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그런 강아지들을 보고 만지면서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했다. 강아지들과 놀면서 호주 사람인 발리 개 협회장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서핑을 할 때 봤던 강아지처럼 해변가에 사는 개들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이야기, 호주에서 발리 개를 입양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를 거쳐서 등록하고 서류도 떼고 순번도 기다리는 등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들었다. 한국의 개는 어떤지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대부분 도시에서 많이 키워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이나 책임감 없이 유기하는 견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준 것은 아닌지.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색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들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리에서는 이처럼 동물권이나 환경보호에 대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발리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지만,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발리의 어느 카페를 가도 플라스틱 빨대는 없고 대나무나 종이 빨대, 혹은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빨대가 전부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모든 식당에는 채식 메뉴가 있다. 동물 복지 계란/가축이라는 표기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비건이나 동물복지,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별것도 아닌데 유난 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느낀다. 전통적인 가치관의 영향도 있을 것이며, 한 명이 그런 것을 해봐야 바뀌는 것도 없다 혹은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소리를 한다. 정작 나도 동물 복지나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방향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장은 불가능해 보인다. 몇 년 후에는 동물복지나 환경보호, 채식 등의 트렌드가 찾아올까? 발리 사람들은 관심 없지만 발리 관광업에서 이 트렌드가 중요한 이슈가 된 것처럼, 한국도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바뀌지 않을까?


발리 개 협회에서의 편안한 시간 후에 저녁을 먹으러 프렌치 레스토랑 Folie로 향했다. 발리에서 프렌치라니 뜬금없기는 하지만 물가가 싸서 부담 없이 럭셔리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마음껏 시키고 칵테일도 두 잔씩 먹어도 10만 원이 채 나오지 않는다. 발리의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큰돈이지만, 여행객의 입장에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색다른 요리를 먹고 대접을 받는데 둘이서 10만 원이면 아주 만족이다. 본 매로우 요리와 프렌치 어니언 수프, 양고기 스테이크, 파스타에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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