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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쿠타에서 우붓으로

가짜 커피농장과 5성급 호텔

by 최형주

일찍 일어났다. 지혜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지혜는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바로 옆에 8시에 오픈하는 카페가 있으니 가서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마시자고 말했다. 일어나 간단히 씻고 바로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 지혜가 당황하며 스마트폰을 보며 말했다.

“어, 8시에 오픈한다고 구글지도에 나와있는데 왜 아직이지?”

나는 내 스마트폰을 보고는 그 이유를 알아챘다.

“혹시 아직 시간 안 바꾼 거 아니야?”

발리와 한국은 시차가 1시간이다. 지혜의 스마트폰의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발리의 시간은 오전 7시였다. 아직 오픈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여유로운 발리에서 아침 7시에 오픈하는 곳은 편의점 말고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사서 숙소로 가 먹기로 했다. 커피 두 잔과 케밥, 컵라면, 파파야를 구매했다. 커피는 진하고 달달한 믹스커피와 흡사한 맛이었고, 케밥은 주문하니 즉석에서 만들어 주었는데 너무 기름맛이 강해 먹기 힘들 정도였다. 인도네시아 향신료가 들어간 컵라면은 먹을만했고, 파파야는 역시나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숙소 내의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전날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이번에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사지를 받으며 기분 좋은 가수면 상태에 빠졌다. 가수면 상태에서 몽롱한 정신 상태로, 마사지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다. 고대 마사지는 이렇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에 대해 생각했다. 고대 지도자들은 스포츠나 운동을 즐기는 것이 건강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주 귀찮은 행위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느 인간들보다 돈이 많았고, 자신들을 보필해 줄 사람들이 많았기에, 귀찮지 않게 건강과 육체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관절과 근육, 살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운동이다. 그렇다면 내가 움직이지 말고, 남이 움직인다면 어떨까? 그것도 내가 잠든 시간에, 내가 인지하지 못하게 수행한다면 나는 잠자면서 그 이득 - 건강과 육체미 - 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결론에 이른 어느 고대의 지도자는 자신의 하인들 중 손힘이 좋고 신체 활용에 대해 잘 아는 이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시도해 볼 것이다. 많은 경우 그 시도는 허망한 결론에 도달할 뿐이겠지. 하지만 그중 특출 난 이는 그 행위가, 자신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몸을 누군가 이리저리 가동하는 행위가 운동과 같은 효과는 없다고 하더라도 근육 이완, 피로 해소, 미용의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고대의 마사지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하며 마사지를 받았다.


첫날밤에 찍은 공용 수영장. 이런 수영장이 있는 숙소도 1박에 3만 원 남짓이다.

마사지를 마친 후, 공용 수영장에 마지막으로 몸을 맡겨 더위를 씻어낸 후 첫 숙소에서의 체크아웃을 했다. 쿠타 지역에서 2박을 마치고, 열대 우림지역인 우붓으로 가는 것이 다음 일정이다. 발리 여행의 4일 차, 그러니까 이다음 날은 지혜와 내가 만남을 시작한 지 4년째 되는 날이고 동시에 결혼기념일이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5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시내에서 떨어져 한적하고 프라이빗 풀장도 있는 고급진 곳이다. 호텔까지의 픽업서비스와 플로팅 조식, 로맨틱 디너가 포함된 패키지도 예약했다. 우리는 5성급 호텔이라는 기대감에 부푼 채, 첫 숙소의 로비에서 픽업 택시를 기다렸다.


약속시간 보다 30분 먼저 호텔에서 보낸 택시가 도착했다. 우붓의 호텔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가는 길에 운전기사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관광객이 훨씬 줄었다는 이야기, 쿠타 지역은 슬슬 사람이 없어지고 좀 더 북서쪽의 해안가인 스미냑이 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떠올려보니 확실히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거리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바 내부에도 사람이 없었다. 어느 술집은 DJ와 종업원들만 있어서 들어가기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운전기사는 지나가는 폐허를 가리키며, 그곳이 코로나 이전에는 주변에서 가장 큰 마트가 있던 장소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세계 전역에 미친 영향을 실감했다. 그 운전기사는 호텔과 계약해 호텔 고객을 픽업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택시 기사 혹은 여행 가이드 일도 하는 사람이었다. 가는 길에 운전기사는 어떤 곳을 구경했는지, 어디를 구경할 예정인지, 어디에 관심 있는 지를 물어왔다. 그리고 호텔 가는 길에 있는 몇 가지 유명 관광지가 있다며 리스트를 나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도가 명확하다. 친해진 후 이후 가이드를 구할 때 자신에게 연락하게끔 하거나, 자신과 커넥션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이득을 보는 그런 의도였다. 우리는 그런 의도를 모른 채 가이드가 말해주는 몇몇 추천 장소를 듣고 있었다. 그중에 루왁커피를 생산하는 커피 농장이 있었다. 카페에서 오래 일했고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당연히 커피를 좋아하는 지혜와 그 영향으로 커피를 자주 먹게 된 나는 커피 농장에 관심이 생겨 가자고 했다. 루왁커피 농장이라 할 때 내가 상상한 것은 드 넓은 평야의 커피나무와 사향고양이, 갓 딴 커피콩을 볶는 향기, 그 커피콩으로 만든 신선한 커피 등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기 위해 만든 가짜 농장이었다.


커피 농장이라고 해서 들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어느 교외의 건물 문 앞에 도착했다. 이미 우리를 안내할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정원이 있었다. 안내자가 그곳에서 커피 열매를 본 적 있느냐고, 이게 바로 커피 열매라고 말해주었다. 마치 여기서 커피를 재배한다고 말하는 듯이. 또 조금 더 들어가니 루왁 커피를 만드는 사향고양이가 있었다.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과육은 소화하지만 원두는 소화하지 못하고 변으로 배출되는데, 이 원두를 세척하여 로스팅한 것이 루왁커피다.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특별한 향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은 둘째 치더라도 그 제조방식으로 인해 동물학대라는 비판이 거세다. 옛날에야 야생 사향고양이나 풀어놓은 사향고양이가 눈 변을 채취했다지만, 요즘은 가둬놓고 (사향고양이 입장에서는 제대로 소화도 되지 않는 음식인) 커피 열매만 먹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가짜 농장에서 사향고양이는 그저 보여주기 용으로 누워있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적어도 이 사향고양이에게는 가짜 농장이 좋은 일을 하는 듯했다.


우리를 좌석으로 안내한 후 이 가짜 농장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루왁 커피 한 잔 을 시키면 12종의 차나 커피 또한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고 안내자가 말했고, 지혜와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켰다. 루왁 커피가 어떤 맛인지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그 커피는 절대 루왁 커피가 아니었다. 카누보다도 향이 적었고 쓴 맛만 존재했다. 더욱 괘씸한 것은 가루를 타서 만들었다는 것을 드러내듯이 바닥에 가루가 가라앉아 있기까지 했다.

“이건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냐?” 하고 지혜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루왁 커피(라고 불리는 무언가)와 같이 나온 다른 커피를 맛보았다. 그 커피들은 루왁 커피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인지, 도저히 마실 수 없을 만큼 맛이 이상했다.

”아무리 관광객상대 바가지 장사라고 해도 좀 너무하긴 하네.” 분노보다는 어이없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지혜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바로 앞에서 원두를 갈아서 드립으로 내려주는 모습 정도만 보여줘도 훨씬 그럴듯할 텐데.” 내가 대답했다.


이제 갈게요, 하면 당연하다는 듯 판매대로 안내받는다. 그곳에는 시중 가격의 대여섯 배는 되는, 어떤 커피인지 언제 로스팅되고 언제 분쇄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커피 가루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커피가 그곳에서 재배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기에, 그냥 인스턴트커피를 재포장한 것이겠지. 우리는 눈길도 주지 않고 커피 한 잔 값만 계산하고 나왔다. 지혜와 나는 ‘차라리 사향고양이 키링이라도 팔았으면 샀을 텐데’라고 이야기했다. 나와서 구글 리뷰를 살펴보니 유명한 가짜 농장인 듯했다. 많은 택시 기사와 가이드가 우리들과 같은 수많은 순진한 여행객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혜와 나처럼 가짜 농장임을 눈치채지만, 그중 가이드와 안내자의 눈총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은 커피를 구입하고 말 것이고, 그렇게 이 가짜 농장은 운영되는 듯했다.


조금은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 있었지만 5성급 호텔의 기대감에 들뜬 지혜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붓에 도착했고, 시내에서 북쪽으로 좁은 길을 지나 계속해서 올라가서 호텔에 도착했다. 비록 이상한 곳에 데려가기는 했지만 운전기사는 친절히 짐을 내려주었다. 호텔 로비에서는 우리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환대했다. 로비는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아니라 우붓의 자연을 부각한 뻥 뚫린 구조였다. 로비 아래층에는 마찬가지로 탁 트인 시야를 가진 식당이 있었고, 그 앞에는 인피니티 풀이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로 안내받았다. 열대 우림을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거실이 있었고, 숙소 내부의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야외 프라이빗 수영장과 테라스가 있었다. 야외이지만 다른 방에서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완전한 개인 공간이었다. 지혜와 나는 풍경에 감탄하고 산 위의 숲 한가운데에 이런 건물을 만든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런 호텔에서 묵을 때는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괜히 아까워진다. 이미 지불한 숙박비를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방 안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호텔은 산 한가운데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주변에 음식점이 없다. 걸어서 20-30분 정도 걸어가야 한 두 개 음식점이 있다. 다행히 그중 한 음식점의 평이 좋아서 저녁에 가기로 하고, 점심은 피자와 폭립을 룸서비스로 주문해서 테라스에서 풍경을 보며 먹기로 했다. 면세점부터 챙겨 온 위스키도 이때 개봉했다. 보모어 15년. 보모어 증류소는 피트향이 강한 아일라 섬에 위치하는 증류소이지만, 그중에서는 피트가 약하고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을 해서 달달한 맛도 있다. 적당히 달달하고 과일향에 적당한 피트향까지 있는 무난하고 밸런스 좋은 위스키였다.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를 선호하는데, 이렇게 여행에서 들고 다닐 때는 톡 튀는 맛보다는 이런 무난한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이 한 병을 여행 내내 홀짝여야 하는데 독특하면 질려버리지도 모르니 말이다.

IMG_6017.JPEG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프라이빗 수영장. 그 앞에서 피자, 폭립과 위스키.

우붓 지역은 이전에 지냈던 쿠타와는 날씨가 약간 다르다. 산 위이기도 하고, 북부이자 내륙지방이기도 해서 기온이 다소 낮고 아침이나 밤에는 쌀쌀하다. 물론 햇빛은 여전히 강렬해서 낮에는 덥고 습한 건 마찬가지지만. 호텔에 도착한 시간도 낮 2시 정도로 가장 더울 시간이어서 점심을 먹고 방 안의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혔다. 여행기를 적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렇게 수영장을 자주 들어갔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마 발리나 비슷한 기후 지역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호텔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호텔 메인 풀장으로 가서 아이스커피와 다과를 먹으면서 수영을 하고 놀았다. 저녁까지 그렇게 수영하며 놀다가, 먹고 마시고, 누워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나시고랭과 폭립을 먹었다. 벌써 세 번째 폭립이다. 고기는 질리지 않는다. 이 식당은 논과 야자수로 둘러 쌓여서 경치도 훌륭하고,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다음날 점심에 또 오기로 했다. 호텔에 오는 길에 망고스틴을 구매했는데 발리에서 처음 먹어보는 단 맛이 있는 과일이었다. 호텔 방의 스마트티브이로 유튜브를 보고, 신라면 컵라면을 야식으로 하나 먹고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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