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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Oct 14. 2023

여행의 이유:휴가

<주간 여행 에세이> - 7

 2023년 10월부터 6개월 간 세계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멕시코시티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남미 쿠바를 비롯해 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을 거쳐 유럽, 터키, 아시아 등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이 여행기간 동안 여행 기록을 남기고 여행에 대한 잡다한 글, 그러니까 여행 에세이를 쓰려고 합니다. 부담이 없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기에 스스로에게 미션을 부과했습니다. 어느 나사 빠진 신문사에서 나에게 여행 소재의 주간 칼럼을 의뢰했다는 생각으로, 매주 한국시간 토요일 오후 9시에 한 편씩 업로드해보려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앞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물어볼 질문이 하나가 있다. 나는 여행을 왜 가는가? 부가적인 여러 이유들이나 몇몇 장점들 말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말고, 여행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행을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뜻이 나온다.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유람이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이다. 일이라는 목적을 빼고 더 일반적으로 만들면 <여행 =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위해 다른 장소에 가는 일>이다. 여행하고 싶은, 그러니까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근처에 있는 익숙해진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일은 반복과 숙달을 요구하기에 그 일에 익숙해진다. 일상이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은 답답함을 낳는다. 모두들 정도는 달라도 조금씩 답답함을 가진 채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해방은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성과 편안함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안정성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어렵다. 경력 사이에 몇 년, 아니 고작 몇 달의 공백 기간이 생기는 것도 그에 대한 확실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회다. 따라서 불안과 불편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답답함을 안고 사는 것을 대부분 택하게 된다. 일상의 반복을 기꺼이 선택한다. 물론 그런다고 답답함이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참고 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도 아니다.

  답답함을 계속 축적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버리면 사회에도 개인에게도 좋은 점이 없다. 그 때문에 사회에는 휴가라는 제도가 존재해 개인에게 1년에 15일간의 일탈을 허락한다. (2017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는 평균 15.1개를 부여받고 7.9일을 사용한다고 한다.) 익숙해진 일상에서 떠나 가까운 곳, 먼 곳, 혹은 가상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통해 해방 욕구를 충족하고 답답함을 해소한다. 꼭 여행이 아니어도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여행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이 있다. 어딘가로 떠났을 때 하는 행위는 일상과 괴리되어 있으며 일상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또한 전적으로 소비를 하러 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있다. 그렇기에 여행자들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이 자유로운 태도는 답답함의 본질과 엮여있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인터넷의 수많은 여행 팁과 후기, 여행사의 상품들은 사용자에게 이 자유를 주기 위해 잘 조직되어 있다. 여행은 답답함을 해소한다.

 사람들은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소마 soma’라는 알약이 있다. 일 세제곱센티미터면 열 가지의 침울한 기분이 물러가고, 기독교 사상과 술의 모든 이점을 지녔지만 결점을 하나도 없으며는 약이다. 이 알약으로 인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길 틈 없이, 계속해서 일을 하거나 오락을 즐긴다. 휴가로서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일을 그만둔다거나 더 조금 일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 답답함을 지우고 덮는다. 이 휴가로서의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업무 능력, 직장에서의 지위,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혹은 가족부양이나 여러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인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자신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방해가 되는 감정을 지워내고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생계와 직업 생활의 가운데서, 간간이 즐기는 휴가로서의 여행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모습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여행의 모습은 특이한 형태의 여행이다. 최소 하루 8시간씩 주 5일 1년 평균 1900시간 일을 시키고 싶은 사회가, 답답함을 느껴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만들어낸 특이한 형태의 여행이다. 여행의 일부분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여행을 말할 때는 이 여행, 휴가로서의 여행을 일컫는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나는 이에 대해 먼저 언급했고, 다음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여행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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