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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태평양 건너 한국에 대해 생각하다

주간 여행 에세이 15

멕시코에서 데킬라 마을 투어를 했을 때 프로그램 중간에 공연이 있었다. 화려한 색상의 치마를 입은 여성 세명과 두건을 쓰고 칼을 든 뱃사람 같은 복장의 남성 세 명이 공연자다. 여성들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화려한 문양을 연출하고, 남성들은 칼을 맞부딪히며 소리를 내며 여성들과 함께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데킬라에서 그 공연을 볼 때는 눈요기를 하며 앉아서 쉬는 시간 정도로 생각했고, 그 공연의 의미에 대해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일, 멕시코 플라야델카르멘에서 호텔에 1박 하는 날이 있었다. 호텔에서는 저녁마다 공연을 했는데, 그 공연 중 일부가 데킬라 마을에서 했던 공연과 같았다. 같은 형식의 공연을 두 번째 보면서 공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멕시코라는 나라는 원래 아즈텍 문명 혹은 마야 문명이 존재하던 지역이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이 침략하면서 원래 있던 문명들이 전부 파괴되었다. 현재 멕시코에 사는 사람들의 60% 이상은 메스티소(스페인과 이곳 원주민의 혼혈)이다. 그 혼합의 역사는 수백년간 지속되었다. 이 전통 공연의 원주민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과 뱃사람 분장을 한 남성의 조합의 공연이 말하는 내용은 뚜렷해 보인다. 여기서 궁금증이 들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침략자라는 역사를 가진, 그렇지만 인구 절반 이상의 조상이기도 한 스페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저 공연을 하는 공연자들은 무슨 마음을 가지고 공연을 할까? 이 공연이 수 백 년의 전통을 이어가는 방법이라 생각할까, 아니면 그저 화려한 테크닉으로 관광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할까? 멕시코 사람들이 그들의 전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의 전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한국,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전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타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되는 여러 악습들이 먼저 생각난다. 전통으로 인해 지켜온 여러 가치들을 전면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불편함이나 세련되지 못함 혹은 고비용 등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고 하는 많은 시도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지만 내 쪽에서 먼저 다가가지는 않은 주제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나라, 내가 한국인이라는 의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일본 혹은 북한에 대한 부정으로만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한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천성 탓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이라는 지역보다는 21세기에 성인이 된 현대인이라는 시대 의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듯 그다지 생각하지 않은 주제이지만, 태평양을 사이에 둔 멕시코라는 나라에서 내 고향을 떠올린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보려 한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예를 들어 보자. 지지하는 정당, 아니면 소속한 회사를 생각해보자. 만약 회사에서 회계 부정을 통해 불법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혹은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들을 벌인다면? 아니라고 생각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떠날 것이다. 나는 그 소속들을 내 마음대로 옮겨다닐 수 있고 취사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향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한국인이다. 내가 무언가 마음을 먹고 이민을 가든, 국가가 무슨무슨 이유에서 내 국적을 박탈하든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직된 분위기, 수직적인 문화, 비교하는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향은 바꿀 수 없다. 여권에 표기된 국적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한국인 부모님으로부터 유전자를 받았고, 유소년기에 한국에서 자라며 먹고, 자고, 놀고, 공부했다. 그로부터 내 습관이나 기호 혹은 취향이 결정되었다.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신적으로도, 가치판단의 기준에 대해서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결정 요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결정적인 부분 중 하나임은 명백하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넌 멕시코에 와서 한국에 대해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그럴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그 회피는 언젠가는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포함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 귀찮은 성격이기 때문에.

 가진 것, 소속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바꾸거나 혹은 떠나는 것. 그냥 받아들이거나 무시하며 사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로 나는 무관심하고 혹은 매정하다. 그렇기에 열성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개입하여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떠나는 쪽을 택한다. (어쩌면 이번 6개월 간의 여행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한국과 그 곳의 정서를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무의식이 등 떠밀어 도움을 준 결과일지도 모른다.) 앞서 여러번 말한 것 처럼 한국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행동은 하나 뿐이다. 바꾸는 것.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변화시키기 위한 일에 매진하겠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항상 누워있지만은 않겠다는, 아주 작은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한국에 대해 생각하고, 글쓰고,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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