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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내일이 기다려지는 매일매일

주간 여행 에세이 14

여행을 할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거리를 걷고,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곤 한다. 그리고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는 다음에 갈 여행지에 대해 찾아본다. 분위기는 어떤지, 무슨 가게들이 있는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혹은 가는 교통편이나 숙소에 대해서 알아본다. 잠이 들기 전까지 찾아볼 때도 많다. 침대에 누워 다음에 갈 도시에 대해서 찾아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정말 기대된다.’

 내일이 기대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떨까?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대학원을 다닐 때, 일을 할 때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던가? 그런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비슷한 시간의 반복이었고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대학원이나 직장을 다닐 때도 비슷했다. 매일매일 해야 할 업무들이 있었고, 기한이 정해진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정해진 시간 내에 차질 없이, 내 개인 시간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도록 처리해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잠을 잘 때는 최대한 다음 날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다가올 주말이나 휴가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다. 물론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기에 복잡한 마음으로 잠들 때가 더 많았다. 내일을 기대하며 잠드는 것은 여행할 때나 가능한 일일까?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생은 고통과 무료함 사이에 이리저리 내던져져 있다’라고 말했다. 삶에서 안정이 부족할 때 곤궁해지고 삶의 유지가 어려워 저 고통이 따르고, 모험이 부족하면 무료하다. 인생의 많은 순간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무료한 것이 낫지 않은가. 일단은 안정을 찾는 것이 선결과제다. 하고 싶은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것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개인의 선호보다는 사회에 맞춘 일들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이 정도로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다행이지라며 자기 위안을 하거나, 여가 시간이나 주말 혹은 휴일 등을 기다리며 버티는 것 정도가 쉬운 해결책이다. 역시 내일이 기대하며 잠든다는 것은 일상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까? 금요일 밤이나 휴가 전날 혹은 여행 중에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해보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것이 그것이 10년 후라면? 1년 후라면? 한 달 후라면? 일주일 뒤, 혹은 내일이라면 당장 나는 오늘 무엇을 할까? 이 질문은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어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것 같다. 우스꽝스럽거나 장난 섞인 대답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내일 내가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평소에 하지 않는 일들을 하게 될까? 그렇다면 그것들을 지금 하면 된다. 뒷일은 어떻게? 뒷일을 생각해서 지금 할 수 없고 하기가 꺼려지는 일이라면, 그 일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과연 맞는가? 만약 하고자 하는 일이 지금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거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지만 체력과 달리기 실력이 부족하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지만 글 솜씨가 없거나, 좋은 사람 만나서 애를 셋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지만 교제 중인 이성이 없다거나. 그렇다면 돈을 벌고, 운동을 시작하고, 글을 쓰고, 자신 먼저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진지하게 마주 본 목표가 있다면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그 목표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내일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 그 일주일 동안 내일이 기대되는 매일매일을 살아야 한다. 일 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고, 십 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언제 죽는지 모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학교를 다닐 때, 대학원 때, 직장을 다닐 때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 무의미해 보이는 중고등학교 공부도 지금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그런 의미를 안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간다거나, 연구가 잘 된다거나 하는 등의 결과가 바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내일을 기다리며 잠들었을 것이다.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여행을 할 때는 항상 내일이 기대가 된다. 여행이 끝나고 난 후에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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