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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글과 함께하는 여행

주간 여행 에세이 11

여행을 하는 중간에 비는 시간들이 있다. 버스나 기차 혹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새벽에 일찍 일어났을 때나 밤늦은 시간, 다음 일정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쉬는 시간 등등. 이런 시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전자책을 읽을 수도 있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여행 가서 무엇을 했을까? 현지인이나 여행 동료와 이야기를 하거나, 한 두 권 가져간 책을 읽거나, 그리고 글을 썼을 것이다.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수많은 여행기들이 생기게 된 이유가, 이런 글쓰기의 간편함과 여행지에서의 심심함 때문이 아닐까.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의 시대인 만큼 심심함을 달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해야 할 만한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입력이 아닌 출력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 우리는 색다르고 신기한 것들을 경험한다. 박물관에 가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도 있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평소에 먹던 것과 다른 음식을 먹고, 그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입력이다. 받아들이는 행위다.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 또한 모두 입력이다. 물론 여행지에서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입력을 하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출력이다. 경험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행위. 이 나라에서는 이런 이런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러이러한 체험을 해보았는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여행지에서 이런 점은 좋았고 저런 점은 별로였는데 왜 그럴까? 이런 질문들을 나에게서 끄집어내야 한다. 아무리 예쁜 액자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창고에 박아두고 까먹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당장 액자를 걸어두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액자를 언제 구입했고 어떤 점이 좋아서 구입했는지, 어떤 곳에 걸어두면 좋을지 정도는 메모해 두어야 언젠가는 꺼내어 걸어둘 수 있지 않겠는가. 입력만큼 중요한 것이 출력이다. 내 경험 속에서 끄집어 내고 태그를 붙여 두어야 한다.


아무리 인상 깊은 기억이라도 다시 한번 끄집어내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또한 강렬한 경험을 할 때는 그 강렬함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는 것은 그 경험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동시에, 그 경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여행 중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다른 일들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여행지와 관계없는 개인의 사건에 대해 쓴다거나, 소설 등의 창작물을 쓴다거나 하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꺼내어 읽다 보면 그 여행지가 다시금 떠오른다. 여행지를 특별하게 만드는 간단하고 훌륭한 방법이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 사진을 찍어 두는 것 또한 훌륭한 출력 행위다. 그렇지만 사진은 숙련자가 아닌 이상 스토리나 감정, 생각을 담기 어렵다. 영상을 찍어두는 것 또한 좋다. 현장의 생생함을 최대치로 남길 수 있고, 편집 과정에서 경험을 돌아보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장비가 필요하다. 아무리 간소화되었다 하더라도 촬영 장비와 편집 장비가 필요하고, 아무리 쉬워졌다 하더라도 촬영과 편집에는 여러 스킬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되고 어디서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만큼 인터넷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여행기가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여행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듯 여행기를 쓰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글과 함께하는 여행이 보편화되는 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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