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주 Oct 21. 2023

여행의 이유: 출사표

<주간 여행 에세이> - 8

 2023년 10월부터 6개월 간 세계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멕시코시티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남미 쿠바를 비롯해 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을 거쳐 유럽, 터키, 아시아 등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이 여행기간 동안 여행 기록을 남기고 여행에 대한 잡다한 글, 그러니까 여행 에세이를 쓰려고 합니다. 부담이 없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기에 스스로에게 미션을 부과했습니다. 어느 나사 빠진 신문사에서 나에게 여행 소재의 주간 칼럼을 의뢰했다는 생각으로, 매주 한국시간 토요일 오후 9시에 한 편씩 업로드해보려 합니다.


앞서 휴가로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답답함이 쌓이고,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휴가로서의 여행이다. 나에게 이번 여행도 물론 이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전부는 아니다. 3할 정도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의미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러려면 내 경험담을 이야기해야 한다. 스펙터클하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니 짧게 줄여서.


 10년 전 대입이라는 인생의 중요 과제를 나름 성공적으로 마쳤다. 막 성인이 된 나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책임 없는 쾌락 - 술과 게임 - 을 즐겼다. 즐거웠지만 그러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는 대입을 향해 달려왔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지? 정신적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어떤 학기에는 18학점을 모두 인문사회학부 수업으로 채웠다. (내 전공은 화학공학이다) 과학과 공학이 아닌 다른 학문이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면서도 여행은 자주 떠났다. 방학 때마다 국내나 일본, 대만으로 여행도 떠났다. 한 학기 휴학한 후 유럽 여행도 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내포하는 바는, 그 무렵 나는 ‘의미의 부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의미의 부재’를 간단한 질문으로 바꾸면 ‘다들 왜 살아갈까?’라는 질문이며, 조금 더 늘리면 ‘다들 왜 그렇게 살아갈까?’이다. 세상 사람들 각자가 행동하는 그 행동 양식의 근거는 무엇일까? 하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공부하고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못해 그리고 동시에 기꺼이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그때의 나는 품고 있었다. 물론 그때에는 이런 질문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내 행동의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때는 그랬구나,라는 지금의 인식이다. 과거의 나는 그저 무언가 나에게 결핍된 부분이 있다는 것 정도만을 알았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여행을 떠났고, 종국에는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한 달 반 정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왜 여행이냐고? 방황하는 20대의 청년이라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으니까.


 여행은 내 결핍을 해소해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생에 자극을 주었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다. 내 결핍을 일시적으로 덮어 없어진 것처럼 위장했다. 이 정도 즐겼으면 이제 응당해야 할 일을 할 때라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었다. 유럽 여행을 갔다 온 후에 나는 어찌어찌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마음속 결핍과 답답함은 그대로였다. 여행은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건을 거쳐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나는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어떻게 살고 싶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결혼도 했다.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나름의 답을 찾았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 혹은 깨닫는 것은 다르다. 내가 답이라 생각한 대로 행동할 수 있을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하다. 다양한 체험이 필요하다. 한국은 너무나 좁다. 크기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다들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려 한다. 그러면서 삶에 대한 내 답에 대해 더 알아보려 한다.


 30년을 살면서 많은 사고 정지의 순간들이 있었다. 왜 공부를 할까? 왜 연구를 할까? 박사를 해야 할까? 취직은? 결혼식은 해야 하는 것인가? 효도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사회에는 그에 대한 답이 정해져있었다. 초반 20년은 정해진 것을 받아들이는 기간이었고, 그 후의 10년은 그것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기간이었다. 그중 최근 몇 년은 내 자아를 억누르고 사는 것이 세상 편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그리고 아직도 파묻혀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항상 실감하는 기간이었다. 이제 30대가 되었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았을 때 이번 1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번 여행은 그 10년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다.


다음 글부터는 여행 도중 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한달 반 정도는 멕시코에 있을 예정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이유: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