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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주 Jan 04. 2024

도파민에서 벗어나는 여행

주간 여행 에세이 2

여행을 떠나기 두 달 전. 만원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며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거지?’ 아이폰에는 <스크린 타임>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최근 한 달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지난 주의 기록이다. 하루 평균 9시간 21분. 게임과 소셜미디어, 정보 및 도서, 기타, 엔터테인먼트, 교육 순이다. 정보 및 도서는 네이버 앱인데 퇴근하며 야구를 듣는 시간이다. 기타는 웹서핑이고, 엔터테인먼트는 유튜브 시청이고, 교육은 듀오링고를 통한 스페인어 공부다. 출퇴근을 할 때, 밥 먹을 때, 집에서 누워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평소보다 많이 사용한 것도 아니다. 다른 주들도 대략 9시간 전후다. 즉 나는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빼면 (일하는 중간중간에도)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이렇게 질리지도 않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고 있을까? 스마트폰 속의 앱을 쳐다볼 때 내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렇게 중독되어 버린 것일까?

 유사과학과 오류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나에 대해 이해하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 그 이유를 도파민에서 찾아보자.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의욕과 흥미를 부여한다. 예측하지 못한 행운을 만나거나, 기쁘게 하는 일이 예측되거나, 즐거운 일이 일어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좋은 결과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도파민은 분비되고 사람은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 과거에 도파민이 분비된, 쾌락을 느꼈던 행위들을 다시 찾게끔 한다.

 스마트폰은 그런 행위들로 가득하다. 누가 얼마나 내 글을 보고 댓글을 달지 기대감에 부풀어 SNS를 하고 아이템을 얻고 레벨이 오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 유튜브 영상뿐만 아니라 숏츠나 릴스, 틱톡과 같은 짧은 동영상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무서운 점은, 스마트폰에서 접할 수 있는 이 도파민 생산기지들이 도파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석학들이 수 억의 연봉을 받으며 머리를 맞대어 최선을 다해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인간의 도파민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자극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앱을 끄지 않고 계속해서 화면을 쳐다보게 할 수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과 자본을 투입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스마트폰을 끄지 않고 계속 쳐다보고 있게 만드는 것이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넘어서서, 운전 중이나 걸어 다닐 때도 앱을 쳐다볼 수 있도록 애플 카와 같은 스마트자동차, 구글 글라스와 같은 스마트 안경도 개발하고 있다.) 사람에게 쉽게 쾌락을 느끼게 하는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도파민 분비가 계속 자극되면, 점점 둔감해지고, 같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문제는 일상생활의 행위들로는 그 정도의 자극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현실의 일상을 즐기기 어려워진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 지금 이 글을 쓸 때도 도파민은 분비된다. 글이 다 완성된 미래를 상상하면서. 혹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어주는 것을 상상하면서. 하지만 유튜브를 볼 때, 게임을 할 때 훨씬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 10초마다 몇 분마다 도파민이 자극되는 쇼츠와 게임에 익숙해져서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렵다. 한 시간은커녕 30분도 쉽지 않다. 왜 이렇게 잘 안 써지지? 지루한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아무 앱이나 켜면 글을 쓰려고 어렵게 일상 중에 마련한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

 도파민에 중독된 뇌를 돌리는 데는 최소 1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상 중에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행에서는 쉽고 자연스럽게 가능하지 않을까. 어플의 국가 제한이나 제한된 인터넷 사용이 스마트폰 사용을 방해한다. 또 굳이 스마트폰을 보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 오는데 돈을 썼는데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순 없지,라는 생각도 한몫한다. 최근 한 달 살기가 유행이 된 것도 그래서일지도. 앱과 기기는 내 시간을 쉽고 효율적으로 빼앗도록 점점 더 진화한다. 그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도 무언가 해야 한다. 여행에서는 도파민 생산기지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고 일상에서 소소한 내추럴 도파민을 느낄 수 있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장기 여행에서도 스마트폰 중독을 벗어날 수 없다면, 어쩌면 평생 스마트폰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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