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의 자격을 잃다 <인간 실격>

책, 다자이 오사무

by 너무강력해

단숨에 읽어 내렸다. 허허 비슷한 인간을 만났다. 나도 그랬는데. 현재도 그런듯하고. 어린 시절에 읽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쭙잖은 머리로 작가에게 끌려다니며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식은땀이 흘렀다.


주인공 요조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왜인가. 요조는 동물인 소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꼬리를 휘둘러 쇠파리를 잡는 모습에서 인간의 위선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인간이 가진 배신적인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인간은 친하게 지내더라도 언제든지 돌변하여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이중성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지 말라"는 인간들에게는 널리 통용되는 상식이 되었으니. 인간관계의 어려움의 원인이 저것인가. 정말 그런가.


요조는 연기를 한다. 타인을 방심시키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난 너희들에게 전혀 위협적인 인간이 못돼"라고 항변하듯이. 인간이 두렵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그러면 요조는 겁쟁이 인가. 그럴지도. 겁쟁이는 비판이자 비난적인 용어다. 인간은 인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세상은 요조가 하는 행위를 비난한다. 강해져야 하고,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그런데 이건 다수의 생각이긴 하나 꼭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관계가 어려우면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면 된다. 난 어떤가. 도심 속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난 고독하다. 즐겁다. 편하다.


술, 담배, 매춘부가 요조에게 안식을 준다. 인간은 두렵고 항상 연기를 해야 하는 일상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요조는 술은 현실을 잊게 하고 담배는 일순의 즐거움을 매춘부에게는 자신처럼 연기를 하는 동질감을 느끼는듯하다. 결국 중독된다. 항상 술에 취해있고 몸은 망가지고. 모르핀 중독으로도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이어진다. 별수 있나. 중독에서 깨면 지옥 같은 두려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엔 극단적인 선택만이 종착역이 될 것이다. 뭐 그렇다. 요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살아나긴 했지만.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진 않지만 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극단적 선택만이 결론일까. 요조에게 구원이란 그것만이 정답이었을까. 모르겠다. 인간이란 적응을 하지 않는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파악하고 적당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참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요조의 수기 첫 문장이다. 이 문장으로 독자는 작가의 의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만큼 훌륭한 문장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은 언젠가 죽고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