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클라우디아피녜이로
작품의 평가를 보면 칭찬 일색이다. 매우 좋은 작품일 듯한데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무엇을 놓쳤나. 작품 보는 눈이 형편없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문학적 능력의 끈은 짧으니까.
작품의 원제는 '대성당'이다. 우리에게는 '신을 죽인 여자들'로 네이밍 되어 출간되었다. 책의 홍보 때문이리라. 대성당 보다 더 자극적이어서 독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더 적합하니까. 내용 중 신을 죽이는 여자들이 선뜻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혹 있다면 카르멘이나 리아 정도 일 것 같은데, 우선 리아의 경우는 신을 '죽인다'보다는 거부한 쪽이겠다. 모태 신앙이었는데 동생 아나의 죽음 이후 신을 버린다. 카르멘은 신을 광적으로 섬기는 광신도로 그녀가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반 인륜적이다. 신을 추종하고 섬기는 그녀의 행위가 역설적으로 신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을 죽이는 여자라면 카르멘이 리아보다 더 적합할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30년 전 죽은 소녀와 관계된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구조다. 독특하면서도 나름 괜찮은 구조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산만했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 처음 화자로 등장하는 리아는 언니 카르멘과 앙숙이다. 30년 만에 불편한 만남을 가지는데 이야기의 중심이 다음 차례로 넘어가면서 이 자매의 불편한 관계로 파생되는 이야기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마테오는 어떤가. 아르헨티나를 떠나 유럽에 도착한 직후 부모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부모는 그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 또한 다음 차례로 넘어가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한참 읽어 나가다 보면 앞의 두 사건들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르셀라 편은 내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친구 아나의 의도치 않은 임신, 임신 중지를 위한 불법 시술. 열일곱 소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두려운 일이었으리라. 얼마나 두려웠을까.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두 소녀를 말리고 싶어진다. 모든 것을 어른들과 상의하라고. 그러나 불가능했으리. 당시 사회 분위기상 어린 여성의 임신은 곱게 보지 않았고 그녀는 불법 시술로 내몰렸다. 결국 병에 걸린 아나는 마르셀라 품에서 죽게 된다. 마르셀라는 친구의 죽음 이후 생긴 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친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살아간다. 3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친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그녀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그동안 짊어져온 짐을 내려놓은 것이다. 나는 그녀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읽는 내내 가슴 아팠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귀여웠는데 조금 이상해 보여도 난 그렇게 느꼈다.
훌리오, 무책임하고 나약하며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똘똘 뭉친 가톨릭 광신도이다. 아내인 카르멘은 훌리오와 같은 광신도이자 남편과 달리 행동력이 강하고 냉정하며 사악하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지적하려는 종교의 문제를 들어내주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카르멘은 동생의 죽음을 방치하고 시신을 토막 내고 불을 질러 쓰레기장에 유기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신의 뜻이라고. 종교는 그녀에게 변명의 도구이자 자기합리화의 수단이자 탈출구이다. 어쩌면 작가는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릇된 광신도들을 그녀를 통해 비판하고 우리 인류에게 그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릇된 그들의 종교관은 무척이나 위험하며 우리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남미 작가의 작품은 낯설다. 예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에도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세계적인 인기의 이유를 알지 못해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겐 이 작품도 그와 같은데 작품의 수상 실적이 워낙 화려하니 아무래도 나의 무지 때문일 것이다. 대싯 해밀상을 수상했다는 대목에서 불현듯 난 대싯 해밀 보다 레이몬드 챈들러를 더 좋아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드보일드, 레이몬드 챈들러. 한때 푹 빠져 살았었지.
이대로 끝내면 글의 마무리가 이상한 것 같아 조금 더 끄적여 보겠다. 작품이 훌륭하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결국 작품의 평가는 독자 개인의 몫이며, 열이면 열 모두가 훌륭하다고 노래 불러도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원래는 대세순응형인데 이제는 의지꼿꼿형 인간이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