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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에게 따듯한 위로와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책, <테스> 토머스 하디

by 너무강력해

어린 시절 집에는 '테스' 책이 있었다. 어린이용 동화가 아닌 꽤 두꺼웠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읽어냈다. 시간이 흘러 어쩌다 어른이 된 지금은 비극적 결말 정도만 기억에 남는데, 책장을 넘기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디가 완성한 이 작품이 이렇게나 훌륭했다니 여태껏 모르고 지낸 세월이 억울할 지경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죽기 전에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리라.


무능력하고 허영만 가득한 부모와 자신의 밑으로 돌봐야 하는 동생들이 여럿 있는 집안의 맏딸인 테스는 알렉이라는 난봉꾼에게 겁탈을 당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낙농가에서 소 젖을 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인 클레어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자신의 과거로 인해 클레어에게 버림받는다. 부친의 사망으로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난봉꾼 알렉에게 의지하지만 남편이 다시 찾아오자 그녀는 알렉을 죽인다. 여기까지가 테스라는 한 여인의 인생을 요약한 것으로 그녀의 인생이 아주 비극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면 테스는 어떻게 했을까. 자신의 슬픈 운명 앞에서 도망치거나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만 있었을까. 아니, 아니다. 그녀는 싸우고 저항했다.


그녀는 농사를 짓거나 소젖을 짜면서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해 나간다. 알렉에게 겁탈을 당한 이후 부자인 알렉의 요청을 받아들여 물질적 안락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돌아선다. 자신의 아기가 세례를 못 받을 위기에 처하자 그녀 자신이 직접 세례를 한다. 현재의 어려움을 핑계 삼아 은둔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클레어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버림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기다렸고 기다리면서 홀로서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 알렉과 동거하는 중 남편에 돌아오자 알렉을 죽이고 남편에게 간다. 알렉을 죽임으로써 자신은 온전한 클레어 부인이 되었고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이룬다. 어떤가. 대단하지 않은가. 그녀는 주어진 불행에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서 싸우며 극복하려 노력했다. 이러니 슬픈 운명과 맞서 싸운 테스라는 여인에게 따뜻한 위로와 뜨거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테스가 알렉을 죽이고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 그녀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어 죽을 것을 알지만 그녀는 사랑을 선택한다. 테스와 클레어 두 사람의 사랑이 시간이 지나 변질되기 전의 온전한 사랑만을 그녀는 누리고자 하였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오는 장면으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다. 슬퍼서. 그리고 나는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일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어떠한 꿈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큰 울림과 깨달음을 얻었다.


작중 클레어가 물이 불어나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낙농가의 네 처녀를 안아서 개울을 건너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드라마 '연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테스의 장면에서 따온 것 같은데 확인할 길은 없다. 하긴 앞서 장면은 비슷하지만 여주인공 두 명이 자신이 당한 불행한 과거를 고백했을 때 남주인공 둘의 반응은 다르다. 한 명은 충격받고 떠나고 한 명은 안아주고.


즐겁고 행복하다. '테스'를 읽는 시간 내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녀의 비극적 운명이 슬프기는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을 접하는 것은 언제가 유쾌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행복은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은 관계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다.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지금에 무척 감사하다.


문학적으로 영국은 제인 오스틴의 나라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러나 '테스'를 읽은 지금, 만약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바꾸겠다. 토머스 하디의 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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