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인 오스틴
개인적으로 고전을 좋아한다. 책 리뷰의 상당량이 고전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고전이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빡빡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그런 고전 중 하나이고 당연히 여러 번째 접하고 있다. 여전한 큰 즐거움을 주었고 부모가 되고 나니 미혼의 딸 다섯을 가진 베넷 부인을 동정하게 된다. 미혼의 딸 다섯을 둔 불쌍한 어머니의 딸들 시집보내기 정도의 부제가 붙어도 될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 사람들에게 사실상 최고의 고전문학 작가이다. 셰익스피어는 상수이니 제외하면 그렇다. 그녀의 소설들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부조리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일듯하다. 풍자도 풍자인데 200년이 지난 후대의 독자들이 보기에도 꽤 유쾌하다. 게다가 보통 문학작품 하면 꽤 어려운 작품 해설이 따라붙는 것이 보통이다. 어렵게 쓰기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너도나도 난해한 글들로 가득 찬 해설들이 부록으로 달려있다. 원 작가들이 이러한 행태를 알았다면 "내 작품에 나도 모르는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라며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만과 편견은 이런 문학작품들과 달리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 당시의 사회구조적 문제에 따른 여성들이 받게 되는 차별과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유쾌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성에 대해 심각한 차별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여성은 번듯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고 상속 또한 받을 수 없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결혼이 유일하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동네에 돈 많은 총각이 이사 온다는 소식에 베넷 집안은 들뜨고 술렁인다. 미혼의 딸 다섯을 둔 집이고 결혼이 여성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럿 루카스의 경우도 그녀는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콜린스라는 남자를 결혼 상대로 선택한다. 그의 안정적인 수입을 선택하는데, 그녀가 자신은 나이도 들었고 지쳤다고 말하는 부분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시대였다. 또한 여성의 역할을 강제하고 제한하는 억압 기재도 엿보인다. 여성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피아노, 그림, 노래 배우기를 강요받는다. 이런 교양들은 남성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들로 여성이 남성에게 즐거움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의 산물이다. 그래서 작중에서는 엘리자베스가 그림을 못 그리고 피아노에 서툰 점도 시대에 저항하는 주체적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 같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이런 차별의 시대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틀에 박힌 허례허식과 인습을 거부하고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하게 살아간다. 남성의 경제력을 최우선시하는 기존의 여성들의 이성관을 그녀는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다아시의 첫 고백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한 의지에도 그녀도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가 혼자의 힘으로 자신이나 가족들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리디아의 사랑의 야반도주 앞에서 그녀는 무기력했고 눈물만 흘렸다. 그것도 다아시 앞에서. 그녀 앞에 놓인 문제들은 다아시의 조력으로 해결된다. 어쩌면 그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어쩌겠는가. 당시의 여성들로서는 능력의 부족보다는 그러한 능력을 쌓을 기회조차 없는 차별의 시대였으니. 여성은 남자가 제공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여성의 운명은 남성의 손에 달려있는 냉정한 현실이다. 어떻게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그녀와 다아시와의 결혼이 잘못된 결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성을 찾았고 그의 막대한 경제력으로 현실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조화된 결혼이었다. 어쩌면 픽션 다운 결론이고 당시의 독자들은 가슴 설레하며 자신만의 행복한 상상에 빠졌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현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남자의 이름으로 출간하고 인세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황당한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재능과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고 당당하고 주체적인 인생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다니 개탄스럽다. 비록 그 시대는 제인 오스틴을 버렸지만 그녀는 그녀가 남긴 작품들로 되살아 났고 우리의 시대는 그녀를 영원불멸의 작가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