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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와 아름다운 마무리로 웹소설 왕좌에 오르다

책, <옷소매 붉은 끝동> 강미강

by 너무강력해

결말을 알고 있어 슬프다. 눈물이 쏟아졌다. 의빈 성 씨는 끝내 죽는다. 200년 전 인물이니 죽었다가 맞겠다. 그녀는 스스로의 사람으로 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상전을 모시는 궁녀로, 왕의 후궁으로, 세자의 생모로 살았다. 어쩌면 주체적 인생이란 불가능하지 않나. 인간이 인간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누군가의 가족, 친구, 지인,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된 인간이다. 그녀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주어진 현실에만 순응하지 않고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 인간이었을 뿐.


작가가 7년에 가까운 시간을 공을 들인 작품으로 알고 있다. 우선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7년이란 시간을 한 가지 목표에 정성을 쏟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학계의 7대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해 낸 수학자 페렐만의 경우도 7년 동안 증명에 올인했다고 한다. 다들 그의 업적과 기행에 관심을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공을 들인 그의 노력일 것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자문해 보고 싶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여본 적 있는가. 없는 것 같다.


보통 웹 소설에서는 목적을 정해놓고 거기까지 가기 위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분량을 채우기 위한 의심마저 든다. 옷소매는 아니다. 작가의 지극정성이 훌륭한 내용과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난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읽는 내내 행복했다.


구성도 돋보인다. 영조와 영빈, 정조와 의빈을 대조시켜서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 덕임이 영빈의 빈소에 들어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녀와 왕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정조와 덕임과의 애정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묘사가 섬세하다. 애간장이 조금 타기도 하지만 이성 경험이 없는 그와 그녀의 서투름이 귀엽다. 풋풋하다.


사극은 역사가 스포다. 우리는 의빈 성씨의 죽음을 알고 있다. 덕임은 죽었고 슬픔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그녀의 웃음이 생각나 슬픔은 배가 된다. 허나 한 가지, 옷소매는 소설이다. 픽션이란 말이다. 작가는 슬픈 역사적 사실 이후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마련해 두었다. 마치 성덕임과 이산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을 위로하고 동화 같은 결말로 독자에게 행복한 상상을 유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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