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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불었다

책, <푹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by 너무강력해

한 인간이 이성을 얼마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한 인간이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보라. 감히 말하건대 당신은 그 답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중략)..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두 남녀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극한의 사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이 되어 결코 헤어지거나 사라질 수 없다. 세상 전부가 폭풍에 사라진다고 해도 둘은 서로만 남는다면, 웃고 있을 위인들이다. 이런 사랑은 어떨까. 괜찮을 것 같다. 지독하지만 서로의 영혼에 깊이 박혀 남남이 될 수 없는 사이. 이번 생에는 불가능해도 다음 생에는 한번 가능하지 않을까.


폭풍이 몰아쳤지만 희망의 새싹은 피어났다.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로 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지만 헤어튼과 후대 캐서린 두 남녀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며 새로운 희망이 싹틈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 둘은 세상을 떠난 히스클리프와 선대 캐서린의 분신처럼 보인다. 히스클리프와 헤어튼, 선대 캐서린과 후대 캐서린은 성격들이 매우 비슷하며 히스클리프의 복수 중단과 죽음으로 둘의 장밋빛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불행했던 둘의 운명을 위로하기 위해 현생에서 사랑을 이루어주는 작가의 배려인 듯싶다.


오늘날에는 가능하겠지만 고전 작품에서 이런 스토리가 가능하다니 놀랍다. 막 나가는 주인공 남녀와 주변 인물들, 그들의 내뱉는 거친 언행과 불량스러운 행동들, 툭하면 죽어나가는 등장인물들 무엇 하나 온전하지도 교훈적이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출시 당시에도 어마어마한 비판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술가에 에밀리도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에밀리냐 살럿이냐. 한 배에서 태어난 자매도 작품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두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지극한 사랑과 지독한 사랑, 너무 달라서. 두 자매 중 한 명만 선택해 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난 "둘 다 좋다" 정도로 답하고 빠져나가야겠다. 조금 비겁하겠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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