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내용은 짧으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여성인권이라는 주된 주제 이외에도 주체적 인간이란, 우리 또한 세상이라는 인형의 집에서 인형으로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백 쪽 정도의 분량이 천 쪽으로 느껴지는 착각이 일었다.
현재로부터 150년 전 정도의 이야기로 여성의 사회적, 법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 형편없었다. 워낙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조선 시대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주인공 노라 역시 여성차별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길들여 저 성장했고 노라는 아버지의 소유물에서 남편인 토르발의 소유물로 소유자만 바뀌는 인형 신세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자아가 없는 인형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조차 없다. 이는 당시 여성들 대부분 노라와 비슷한 처지였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움, 노래, 춤, 착함, 육아, 근면, 도덕, 종교 등을 강요받는 남성들의 소유물인 여성. 남성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통제했다.
노라는 자신과 남편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도 없고 남편이 자신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혼을 결심한다. 자신이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인형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을 떠나 독립하려는 그녀의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 가짜 세상에서 살아온 노라이기에 진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갖은 고난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독립해야 한다. 인간은 동등하며 여성, 남성이라는 이유로의 차별은 안된다. 누가 누군가를 소유가 가능하다면 노예제도와 다를 바 없다. 위태롭다고 하더라도 노라는 주체적 인간으로, 스스로의 인간으로 우뚝 서야 한다. 노라가 남편에게 " 안돼요. 절대로 안 돼요. 허락할 수 없어요"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통쾌했다. 그래 노라, 잘했어 정말 잘했어. 속이 시원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및 여러 집단과 조직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이로 인해 여러 관계를 맺게 되고 여러 기대를 받게 된다. 가족의 기대, 지인의 기대, 사회의 기대, 국가의 기대, 지구의 기대, 어쩌면 우주의 기대....너무 나갔나. 여하튼 우리는 그러한 기대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도 노라와 같은 인형 아닐까. 세상이라는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자아 없는 인형 말이다. 가족이 원하는 대로 꿈을 정하고 세상이 정해준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착하게 행동하고 공부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배우자 등등 등등. 우리는 자아 없는 인형처럼 세상이라는 인형사의 줄에 매달려 의미 없는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노라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여성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있었을 노라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당신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뜨거운 투쟁이 있었기에 차별이라는 괴물의 힘을 줄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