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얻는 소소한 행복
눈길 걸으며 건진 에피소드
특별한 운동은 안 하지만 매일 30분씩 걷기는 꾸준히 한다. 동네 한 바퀴 돌면 20분 정도 걸리고 동네 둘레길이라 할 수 있는 공원 길을 걸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하루에 대략 5,000보에서 8,000보는 걷는 셈이다.
이렇게 매일 걷기를 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걸 알기에 때론 귀찮고 힘들어도 매일 걷게 된다. 몇 년간은 아침 6시에 친구랑 함께 걷기도 했다. 요즘 그 친구가 바쁘다 해서 혼자 걷는다. 혼자 걷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걷지는 않는다. 아침엔 사실 추울 땐 추워서 나가기 싫고, 귀찮아서 나가기 싫다. 점심식사 후에나 저녁때 걷곤 한다. 식사 후 배부르고 졸리거나 할 때 얼른 일어나 나가서 걸으면 잠도 달아날 뿐더러 당지수도 내려가고 아주 좋다.
이곳 달라스 지역은 눈이 많이 오지 않는 곳인데 며칠 전에 뜻밖에 눈이 많이 내렸다. 이곳은 몇 년에 한 번 어쩌다 조금만 눈이 와도 꼼짝할 수가 없다.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이다 보니 도로의 제설 작업을 바로 하지도 않고, 몇 년에 어쩌다 올까 말까 한 눈을 생각해서 대비책을 따로 강구하지도 않고 거의 무방비 상태인 것 같다. 며칠 전 갑자기 내린 눈으로 이틀간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 집콕하고 있는 게 상책이다. 이럴 땐 전기가 안 끊기고 물이 나오는 거가 제일 감사한 일이다. 여러 해 전 폭설이 왔을 때 전기 끊기고 물 안 나왔을 때의 끔찍했던 경험은 떠올리기도 싫다.
어제 오후에는 눈이 많이 녹아서 걸으러 나갔다. 잔설이 남아 있어서 좀 미끄러운 데도 있고 질척거리긴 했지만 요리조리 피해 가며 공원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모처럼 온 눈을 보니 좋은지 밖에 나와서 친구들끼리 눈싸움도 하고 언덕진 곳에서 미끄럼도 타면서 추위도 잊은 채 놀고 있다.
걷다 보니 눈 덮인 사이로 민들레꽃도 고개를 내밀고, 바이올렛도 얼굴을 내민 채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기온이 조금 올라가니 눈사람 형체가 두리뭉실하게 녹아내렸다. 녹아내리다 만 그 모습의 애틋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눈도 입도 잃어버린 안쓰러운 모습을 쳐다 보고 있다가 사진에 담아 보았다.
낮달이 걸려 있는 호숫가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후루룩 날아간다. 쓸쓸해 보인다. 호수 건너편 빈 의자에도 눈길이 간다. 아직도 깔려있는 눈 때문에 풍경은 얘기를 내게 걸어 주고 있다. 오늘은 눈이 거의 녹아서 걷는데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천천히라도 뛰는 게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니 천천히 뛰어 보았다. 누군가 앉았다 빈 의자에 뿌리고 간 사연도 눈에 덮혔겠지.
걷는 속도에 뛰는 흉내만 내더라도 좋다니 뛰는 듯 걷는 듯했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더웠다. 집 나서기 전 단단히 챙겨 갔던 모자며 목도리를 재빨리 풀어 재끼고 물부터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