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출간 강연회 소식
매일 운동화를 챙겨 신고 나서는 산책길은 내게 단순한 보행의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대지의 숨결을 느끼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계절을 읽어내는 정갈한 의례와도 같다. 요즘처럼 봄볕이 고운 날이면, 내가 즐겨 찾는 공원의 호숫가 산책길엔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든다. 물가에서 유유자적하던 야생 오리들이 어느새 뭍으로 올라와 뒤뚱거리며 풀밭을 거니는 풍경이다.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연신 주둥이를 풀밭에 박았다가 고개를 쳐들기를 반복한다. 생의 활기가 넘치는 그 몸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생명력이 내 감각까지도 기분 좋게 깨우는 것을 느낀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숫가 근처, 하얀 클로버 꽃이 마치 점묘화처럼 펼쳐진 곳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그곳에 이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춘다. 사실 이 클로버밭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몇 년 전, 온 세상을 하얗게 집어삼켰던 기록적인 겨울 눈 폭풍이 휩쓸고 간 뒤로 이 일대의 클로버는 종적을 감췄었다. 수년간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이름 모를 낯선 잡초들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존재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생명들이 채우는 것을 보며 나는 잔디밭 잡초들의 세계에도 엄격한 질서와 영역 다툼이 있음을 깨닫는다. 바람에 실려 온 씨앗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신발 밑창이나 잔디 깎는 기계의 날에 묻어온 운명적인 이주였을까. 혹한에 얼어 죽고 혹서에 말라 죽는 생멸(生滅)의 순환 속에서, 올해 다시 무성하게 자라난 클로버밭을 마주하는 일은 마치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 벅찬 기쁨을 안겨 준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클로버 무더기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즉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일었기 때문이다. 예전 이 호숫가에서 여러 개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던 기억이 내 눈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허리를 숙이고 눈을 크게 떠 풀숲을 헤집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초록 잎 무더기 사이로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네 잎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살핀 그 '행운'은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네 개의 잎 중 세 개는 작고 위축되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만 기형적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조화로운 대칭과는 거리가 먼, 어딘가 일그러지고 못생긴 모양새였다. 잠시 망설였다. 이것을 행운이라 부르며 꺾어 가야 할까. 나는 결국 손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볕을 충분히 쬐고 나면 저 일그러진 잎사귀도 제 자리를 찾아 예뻐지지 않을까’ 하는 가련한 기대감을 그곳에 심어두기로 한 것이다.
며칠 뒤, 나는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호숫가 커다란 낙우송 나무 앞, 내 마음속에 이정표를 세워두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자연은 그리 쉽게 자신의 비밀을 내어주지 않았다. 수천수만의 클로버 잎사귀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나를 조롱하듯 일렁일 뿐, 그때 그 못생긴 네 잎 클로버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순간 옹졸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모양이 좀 빠지더라도 그냥 꺾어 올걸.’ 눈이 시릴 정도로 풀밭을 훑었지만, 한 번 놓친 인연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허탈함에 빈손을 털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아쉬움이 머물던 자리에 뜻밖의 평온함이 들어찼다.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 저 푸른 풀밭 어딘가에서 제 모양을 갖추며 꿋꿋이 자라고 있겠지.’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그 네 잎 클로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광활한 대지에 나의 행운을 잠시 ‘맡겨둔’ 것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금방 시들어버릴 행운보다는, 대지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며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설렘을 줄 행운으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근사하지 않은가.
흔히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지천에 널린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평생 잡히지 않는 요원한 행운을 쫓느라 발등 아래 놓인 수많은 행복을 짓밟고 사는 것은 아닐까. 오지 않는 행운을 기다리며 초조해하기보다, 매일 마주하는 산책길의 공기, 다정한 오리들의 몸짓,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세 잎 클로버의 소박한 군락에서 작은 기쁨을 건져 올리는 것이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일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다. 그것은 거창한 성취 뒤에 오는 보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이미 뿌리 내린 추상화 같은 씨앗이다. 그 씨앗에 매일 감사의 물을 주고 성찰의 볕을 쬐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괜찮은 삶이자 진정한 치유의 과정이다.
산책길 클로버밭에 내 행운을 맡겨두고 돌아오는 길, 내 발걸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경쾌했다. 행운을 소유하지 않아도 내 마음엔 이미 세 잎 클로버 같은 소소한 행복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내일 다시 이 길을 걸을 때, 나는 그 행운의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든이 마흔에게" 저자 김영희 출간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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