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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타이밍의 미학: 날씨요정은 나만 싫어해.

꽁 꽁 불어오는 강풍 위로 사진가가 날아갑니다.

by 도보방랑가 김근희 Feb 21. 2025

참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 같아요. 그놈의 타이밍이 뭔지.

호기 차게 출사를 예고하고 계획대로 길을 나섰지요. 날씨 요정에게 유독 미운털이 박힌 터라 불안한 마음에 날씨도 거듭 체크했었는데,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어요.  하늘은 쾌청하고 미세먼지는 없고, 구름은 두둥실 떠서 노을 사진 찍기에 딱 좋을 거 같았거든요. 


바다가 보고 싶었고,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때 자주 갔었던 곳을 방문했지요. 잔잔한 호수와 사그락대는 수풀의 바람소리를 기대했었는데 이게 웬일이람, 강풍이 몰아닥쳤지요.

스마트폰의 기상예보는 처음 보는 바람 아이콘이 있었고, 초속 12미터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경고를 알려주었지요. 체감온도 -8도. 그냥 춥기만 하면 사진 찍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데 강풍을 이겨내기에는 제 사진에 대한 열망이 부족했었나 봐요. 


새들도 날지 못하고 떠밀려가고 가만히 서있어도 몸이 앞으로 걸어가게 되는 바람을 맞이하고는 버틸 수가 없었지 뭐예요. 정말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죠. 맞아요, 큰소리 뻥뻥 쳤는데 사진을 못 찍어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리예요.   

* 망해사와 심포항이 보이는 사진은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재탕...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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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사라는 곳이 있어요. 대한민국 관광 100선에 기록될 정도로 수려한 자연이 인상적인 곳이죠. 넓은 수풀 사이로 흐르는 바닷물, 그리고 바람소리. 그리고 시야의 대부분을 덮는 노을. 그 모든 것이 한국이 아닌 것 같은 장소.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정말 이런 곳에서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충격적인 장소였거든요.  항상 해외의 아름다운 곳만 보다 보니 국내의 자연은 조금은 가볍게 봐왔던 선입견을 산산이 깨부술 정도의 충격. 그리고 그래도 매년 한 번은 와보는 곳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겨울에는 와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이렇게 내 집 장만의 꿈은 떠나갑니다. 모퉁이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눈물이 절로 흘러나오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은 남자인지 몰랐는데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더라고요.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서 고갤 들 수가 없어 한 10분도 채 안 돼서 '이동'이라 말하고 '도망'을 쳤지요. 조금만 가면 심포항이라는 곳이 있거든요. 이곳은 캠핑러들에게 핫했던 장소로 잘 조성된 부지와 깔끔한 화장실이 있어서 노지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에요. 이곳은 주말이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인데 평일에는 사람들도 없고 해서 고요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소거든요. 노을이 수면에서부터 피어오르면 바닷물과 수풀이 노랗게 물들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기에 이 풍경이라도 찍어서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늘따라 대자연의 위력이 제 열정을 아득히 압도하여서 포기하고야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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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는 것이 참 그렇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정말 많은 열정이 있었어요. 인생에 남길 풍경사진을 한 장 찍어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움직인 적이 있었거든요. 유명하다는 출사지들의 정보를 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분석해서 어떤 식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파악하고, 교통편과 일출 시간, 배터리와 메모리카드, 복장, 에너지바까지 모든 것들을 다 준비했다고 생각했어요. 


삼각대까지 해서 8-9kg은 넘는 짐을 메고 새벽 1시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서 4시간 정도를 등산을 하고 원하던 포인트에 올랐을 때 사방을 뒤덮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그래도 첫술에 배부르랴는 생각에 근처에 짐을 풀고 그 다음날 다시 산에 올랐죠.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중간에 하산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다음에 다시 방문해서 총 3번째의 시도에서 인생에 남을만한 사진을 하나 담아내긴 했어요. 그 뒤로 한동안 풍경이란 단어만 들려도 치를 떨었지만요. 그 사진은 언젠가 공모전에 내려고 오랜 시간 숙성 중인데 언젠가 보여드릴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네요.


아무튼, 그때 하늘을 진짜 많이 원망했었는데 이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날씨요정하고 척을 지게 된 것이. 그 뒤로 풍경사진을 찍으려고만 하면 기상이 참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네요. 





시간을 되돌려서 오전에는 시간이 잠시 되어 저번에 소개해드린 '책보 책방'을 잠시 들렸었는데요. 강아지(별이)의 사진을 뽑은 것도 있고 해서 선물드릴 겸 찾아갔답니다. 별이는 저번보다는 조금 더 자란 느낌이었고 오늘은 손님이 좀 계셨어요. 전주사람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는데 바로 '전주 초코파이'로 유명하기도 한 '풍년제과'가 표시된 쇼핑백이 여기저기 놓여있었거든요. 여행자 두 분이었는데 책방의 테이블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그리는데 열중을 하고 있었어요. 사장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드리면서 저도 선물로 '별이' 굿즈를 받고 스몰토킹 이후에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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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에  VOSTOK 보스토크 매거진이 꽂혀 있어서 바로 구입을 했어요. 이 매거진은 저번에 방문했을 때 흘러가듯 언급했던 매거진이거든요. 이 책방에 사진 관련된 서적이나 매거진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제가 즐겨보던 매거진인 보스토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 떠났었는데 그 매거진을 구비해 주셨더라고요. 이 매거진은 사진을 중심으로 디자인, 현대미술 그리고 글을 다루는 서적이에요. 어쩌면 제가 쓰고 있는 이 브런치와 비슷한 결이랄까요. 그건 그렇고 흘러가듯 말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기억해 주시는 센스라니. 좀 더 단골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사진의 실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생각하는 건 참 중요한 일이랍니다. 하나의 사진을 보고 어떠한 방법으로 찍었는지, 어떤 주제를 담았는지 고민해 보고 연구해 보는 것. 요즘은 워낙 인스타그램이나 여러 가지 플랫폼에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고 공유를 하지만 실제로 잘 정돈되고 정립된 사진들을 선정해서 보는 게 쉽지는 않지요. 또한 그 사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까지 다뤄서 사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료들은 많지 않기에 이런 매거진을 구독해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사진 실력을 가장 빠르게 키워갈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찍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생각보다 간단한 말이지만 실천은 참 어려운 일이랍니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구입한 매거진을 좀 둘러보다가 자꾸 별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관심을 뺏으려 해서 이내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번에는 손님이 저 혼자였기에 별이의 관심을 독점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에게 관심을 주느라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몇 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져내고 별이를 벗어나 다시 제 특기인 도촬을 시작했지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 몰입할 때라고 믿어요. 모든 근육이 이완된 표정, 오직 하나에만 집중해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그 상태 말이에요. 그 깊은 빠져듬. 그런 순간을 볼 때마다, 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거 같다랄까. 그리고 오늘도 그런 장면을 발견했답니다. 무심결에 사진을 찍고 말았지요


브런치 글 이미지 8


조심스레 스마트폰으로 보정을 하고, 항상 가방에 갖고 다니는 포토프린터를 통해서 출력을 해서 선물로 드렸어요. 여행에 작은 즐거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간단히 인사를 드렸어요. '즐거운 여행이 되세요.'  그리고 다시 매거진을 읽기 시작했지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이 짧은 만남.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상대를 위해 담아내는 사진 한 장, 그리고 그 한 장으로 기억되는 영원한 시간. 사진을 통해서 누군가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작은 추억으로 만들어가기를. 이것이야말로 제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어요.



타이밍이라는 거 참 재미있죠. 계획을 세우고 방문한 곳에서는 한 장도 담지 못했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잠시 들린 곳에서 담은 사진만 남아있다니. 매 순간 사진을 취미로 하게 된다면 이런 일들을 자주 맞이하게 된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항상 카메라를 손에서 떼지 않고 다니지요. 사진을 취미로 시작하시겠다면 앞으로는 카메라를 언제든 꺼내 찍을 수 있도록 가까이 두세요. 그게 바로 사진이라는 것의 시작이랍니다.


'언젠가 찍는 사람의 영혼까지라도 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19년간 사진을 계속해왔는데 오늘은 바람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졌기를, 오늘의 사진을 돌아보며 도보방랑가의 방랑기록을 마칩니다.






다음 글 예고

이번 출사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가서, 계획했던 글을 쓰지 못할 거 같은 상황에 빠졌습니다아.

내일이라도 다시 군산으로 여행을 갈지, 아니면 사진의 기본적인 구도에 대한 글을 작성할지 아직 고민 중이지요. 그래도 적절한 이야기를 찾아서 돌아와 볼게요!  



기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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