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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Jun 23. 2016

호동골 꽃밭을 찾아

찾아가다가 요단강을 건널뻔했지.


사진 공모전을 준비할 겸. 그리고 "자기가 살면서 맨날 보는 동네 사진도 제대로 못 찍는 사람이 스위스 간다고 거기 사는 사람보다 잘 찍을 수 있을 거 같냐?"라는 어느 블로거님의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아침부터 사진기를 들고 나섰다.


대략 '피사체 지상주의'를 조심하라는 요지의 글이었는데 사실 나도 내심 멋진 풍경만을 노리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싶어서 괜스레 반성하는 마음으로 진득하니 마음을 쏟아볼 겸 하고 떠난 걸음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잠시 들린 카페에서-  아침의 카페는 다른 매력이 있다.


전주역에서 버스를 내려서 약 4km 정도 되는 거리를 걷기로 했다.



여행의 숨겨진 즐거움,  목적지를 좁혀가는 그 걸음걸음 


사진을 찍으면 무조건 뚜벅이로 시작하기에 목적지를 향해 가는 걸음걸음을 담아내면서 간다. 

이런 과정에서 추억이 생기기도 하고, 좋은 사진들이 많이 찍히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정해진 목표만 가서 찍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를 담아내는 스타일.  

음악은 귀에 흘려보내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관찰과 사색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걸음걸음.



그런데 오늘은 날을 제대로 잡았다.

아침 8시에 출발은 하였고, 대략 8시 40분부터 걷기 시작하였는데 시작하자마자 땅이 이글거린다.  커피는 마셨는데 물은 챙기지 않았고 햇살은 점차 뜨거워진다. 



아침 9시가 되었을 때 온도를 보니 25도야.
10시가 되니까 27도까지 올라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요단강을 건너는 날이 될지도 몰라.



점차 거리는 좁혀나가고 있는데 시골길 마냥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고 등이 젖어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그림자 밑으로, 그늘 밑으로.  가는 길에 하늘도 한 장 담아보고 어르신들의 뒷모습도 몰래 담아보고.



아니. 이러다 진짜 녹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사진 욕심부리다가 다 놓아버릴지도 모르겠어.  오늘은 입구까지만 가는 걸로.

언덕을 넘어 올라가기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물도 없고 다시 4km 정도를 걸어서 정류장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피사체 지상주의'를 주의하라.


호동골이 목적지였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호동골 꽃밭을 담아내야만 하는 것인가? 

좋은 장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과정 자체를 원했던 것인데 라는 자기 합리화. 하하하.




내가 언제부터 목적 중심적인 걸음을 걸었다고 그러냐.




그래. 그냥 입구에서 살짝 노닐다가 돌아가자.

돌아가면서도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뭔가 담아내고 싶은 것들이 있겠지.



'돌아갈 때는 한번 노래를 듣지 말고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어폰을 빼고 걸었다.

바람이 흔들고 지나가는 풀잎 소리.  자박자박 내 발걸음 소리.  풀벌레 소리.


소리가 날 때마다 주변을 한번 다시 돌아보고. 기웃거려보고. 서성이고. 맴돌고.



사진은 눈으로만 찍는 것이 아니더라.   소리에 기울여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이어폰을 귀에서 떼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이더라고.

만약 이어폰을 끼고 걸었더라면 이 귀여운 강아지는 발견하지 못했겠지.
바람에 스치던 풀잎도 보지 못했을 거야.









나좀 쓰다듬어 봐요.



다음에 또 봐요. 안녕히 가세요.    나를 잊지 말고 다시 찾아줘요. 






https://brunch.co.kr/@guh9876/41  다시찾은 호동골.   < 꽃길을 거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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