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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Aug 16. 2016

노고단을 노곤 노곤하게 올라

노고단은 노곤 노곤해서 노고단이 아니었다. 요단강을 건너갈뻔.

약간은 충동적으로 결정한 지리산 당일치기 여행.

"여행은 순간"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따라서 무작정 떠나버린
나의 여행은 지금에 와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노고단의 정상. 하늘이 청명하고 구름은 풍성하였다.


시작은 전주역. 아침 7시 19분 기차를 타고 구례로 향하였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추측되는 등산가방을 멘 한 무리의 어르신들, 더운 날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연인들, 그리고 홀로 자신의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



전주역의 아침은, 어쩌면.
각자의 방랑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하나의 선착장 같은 느낌을 품고 있었다.



방랑자란,  여행을 좋아한다든지 또는 여행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칭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방랑자란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누군가와 함께하든 아니든 여행을 떠나면서 흘러가는 시간과 사물 속에서 자신만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어딘가를 향하기 위해 마음을 먹고, 그 시간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그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고독을 즐기는 것.



그런 면에서,  
고요한 바닷속에서 종국엔 홀로 떠내려가는 우리는
인생의 방랑자들이라 할 수 있겠지.  


멀리 보이는 에메랄드빛 산맥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중 하나가 아닐까.
사방이 온통 산과 돌, 그리고 나무. 그리고 바람과 구름.  그리고 나.


노고단 정상은 아름다웠다.

빛은 선명했고 대기는 청명하였으며
조금씩 피어나는 안개는 운치를 더하였다.



오랜만의 지리산 산행이라, 체력도 걱정되고 사진기를 사무실에 놓고 와서 마음을 비우고 왔는데 그게 이토록 후회가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다행히도 광각 영역까지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이라 원하는 풍경을 어느 정도 마음에 들만큼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랄까.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노곤 노곤한 다리를 주무르며 찍어놓은 사진들을 되돌아볼 때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직은 나에게까지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




사진에 대한 부족한 내 실력과 한동안 일을 핑계로 멀리했던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끔 만드는 결과물이라 다시 한 번 자기 보기가 되더라.  사진은 타이밍이라는 말. 하지만 그전에 기초 지식과 실력, 그리고 장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좋은 타이밍이 왔을 때에 원하는 피사체를 담을 수 있다라고 머리로는 깨닫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알게끔 만드는 시간이었다.



사진과 별개로. 아름다움은 찾는 자에게 보인다는 말처럼-

노고단 정상에 올라가 본 세상은 실로 아름다웠다. 미려한 산등성이 너머로 산등성이, 그리고 에메랄드빛으로 번지는 멀리 있는 산등성이.  산허리에 붙잡힌 구름.  그 아름다움은 아픔과 외로움을 참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자들만이 맞볼 수 있었던 인내의 결실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내가 다 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햇빛이 비출 때는 선연하게 밝음으로. 구름이 잠깐 비출 때에는 세상을 품는 포근함으로.



빛은 지상에 있을 때보다 산 위에 있을 때  더한 존재감으로 만물을 비추더라.



정상에 올라서 한동안 아름다움을 만끽하고는 이제 다시 하산할 시간.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향하는 길목을 선택하였다.  네발로 기어서 올라와야 한다는 간증 아닌 간증들이 있었기에 차마 시작점으로 정하지 못하고 여행의 마지막 길목으로 선택한 등산로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끝없이 보이던 돌, 돌, 돌. 그리고 버섯, 나무. 어둠

가끔 나오든 다람쥐와 두꺼비. 그리고 날벌레들.


4시간여를 끝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발가락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고 종아리와 발목, 허벅지는 점차 시름시름.  끝이 없는 내리막길과 사방이 온통 돌과 나무뿐이라 어둡고 공허하고 적막하였다.





가끔 물안개가 진득하게 피어올라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잠시뿐.

인적 없는 산길의 내리막은 '고독' 그 자체였다랄까.  풀벌레 소리와 매미소리. 그리고 바람이 서성이며 나뭇잎을 뒤흔드는 그런 소리들만이 가득했던 그 순간에서는


외롭고, 외로웠다.  방랑자는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진정한 고독과 외로움 앞에서는 방랑자를 자처하는 나에게도.  인생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거나 혹은 앞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가끔은 멈춰 서서 옆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방랑자에게나 자신만의 '닻'을 내릴 지점이 필요하다.





잠시 멈춰 선다면
표류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목적지가 같다면 함께 노를 저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오랜만의 글이죠.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 m.daum.net을 통해서 마구 들어오고 계시는데 어딜 통해서들 들어오시는건가요!  알려주세요 O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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