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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Nov 30. 2017

나는 너네 옆집에 살고 싶다

어디였지, 헬로우 하고 외치던 이 녀석은 어디서 봤드라


올해 눈이 내린다면,
앞으로 다시는 31번째 첫눈을 보지 못하는 이 순간.  


* 죄송해요. 오늘은 대놓고 혼잣말좀 해볼께요. 오랜만의 글인데 이런글이라 넘나 미안한거 알죠? :'-)


나이를 차곡차곡 원하지 않게 먹어가다 보니 이제는 주변에서 슬슬 불안한가 보다. 종종 소개팅을 해주겠다는 제안들이 들어오는데, 거참 이거 참 애매하다.  때로는 '한량처럼 나는 사진기 들고 통기타 들고 여행 다니며 살 건데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라고 우스개 소리고 넘기기도 하고 가끔은 '사업을 하느라 다른 여유가 없어서요.' 괜히 뭔가 바쁜 척, 명분이 없는 척 피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 연애가 저만 좋다고 되나요, 서로 마음이 맞아야지. ' 회피하기도 하고.


오늘은 새벽 내, 넷플릭스로 비밀의 숲을 보았다.  그동안 깨작깨작 출근하며, 사진을 찍으러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며 완독 퍼센티지를 초큼씩 채웠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내리 5편을 연달아 보고 지금은 새벽 5시.  마음에 물든 여운이 좀 더 번지기를 기다리다 이렇게 앉아서 오랜만의 생각의 잔여물을 브런치에 기록하다.    


잔잔한 마음에 진한 물결.   




나이를 먹어감에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살아온 그 시간만큼, 이 세상에 빛을 본 그 기점의 순간부터 2017, 11월 30일 새벽 5시까지 측정된 시간의 축척이 점점 짧아질수록 마음의 여유도 짧아지는 것일까. 

사실은 줄어든 축척의 길이만큼 서로를 알아갈 기간이 짧아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를 다 파악한 것처럼 그렇게 서둘러 누구를 만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나를 내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사람에게 충실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내가 좀 더 마음공부가 되어야 한다고 어디 소설책에서 주워들은 내용에 공감한 척,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감정으로부터 나를 보호했었고 한 뼘 정도 더 자랐을 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돌아가심은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해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라고 나 자신을 그렇게 슬픔 속에 매장시켰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나의 시간은 회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때 잠시 피었던 나의 시간은 나의 어리석음부족함으로 인해 시들었었고 그 피고 졌던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배우고, 실패했다.  '무엇이냐고. 어떤 것이냐고. 사랑이란 이름의 욕심과, 사랑이란 변명의 무관심



흘러가는 새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 구조물같은 처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발견한 문구가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계해'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평가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최근에 예비군에 가서 어쩌면 수컷의 본능을 뽐내고 싶어 하는 듯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강제로 엿듣게 된 적이 있다.  [옆에 앉아서 그렇게 자랑스레 이야기하는데 안들을 수 가 있나] 술을 먹고 어디를 가서 누구랑 뭘 했내 안 했네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데,  약간은 충격.  가볍고 가벼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가벼운 존재로 격하시키는 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강제적으로 무거워지고 있었다.




 애기들이 나를 늙은이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안그래도 나이먹어 서러운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리 가벼워서야 되는 것일까.

나는 저들과 다른 시대에 태어나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마저도 달라진 것일까.  사실 몇 년 차이도 안 나는데.. 아 그러고보니! 요즘은 사대강 공사고 뭐고 해서 강산이 변하는 시기도 빨라져서 그런가 스스로 고지식해 진건 아닐까 고민할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가볍고 인스턴트커피 같았다.  



쉽게 따서 뜨거운 물 붓고 금방 들이키는.  
향기도 곧 잊혀지는 커피







'이러한 나의 관점으로 인해 나는 지금껏 혼자인 것일까.  그런데 나는 나의 이 관점을 포기할 만큼 외로운가?'


 로켓트리의 '나는 너네 옆집에 살고 싶다' [클릭하면 유투브] 라는 노래가 있는데 참 노래가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서 지금 이 노래를 무한 반복 중이다.  아침에는 커피를 두 잔 내려 한 잔 가져다주고.  가끔은 무심히 문을 열고 저녁도 나눠먹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같이 가고 김치전 만드니까 맥주 좀 사 와서 같이 먹고.


뒷부분은 뭐, 상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고백했다가 친구로도 남지 못할까 봐 그냥 옆집에 살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바라보고 살고 싶다는 내용의 이야기 같은데.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이면 곁에 두고 오래 두고, 한참 두고 같이 보고 싶은 거.  좋아하는, 좋은 게 있으면 같이 나누고 살아가는 것.  그러다 그 사람이 없으면 허전해질 때 너의 사랑이 될래.  



31년의 11월의 마지막 날.  

나는 아직도, 인스턴스 커피가 아닌 적당히 볶아진 원두에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로 잔 전체를 데우며 진한 향기깊은 바디감을 남기는 드립 커피 같은 그러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망한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이 날 보고 불안해하니까. 어찌 되든 빨리 짝꿍을 만들어서 내보내야 (어딜?)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역시 내 욕심은 아닐까?',  '적당히 타협해야 할까?'


나는 외롭지 않다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 좀 나아지나? 난 이미 걸린것 같은데.




좋아하는 음악 서로 권하고 들려주고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글귀 공유하고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넷플릭스로 같이 드라마 종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종일 함께 놀아보고

서로 취미를 같이 맞춰나가기도 하고, 따로 즐기기도 하고


서로를 자신에게 맞춰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함께 어울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것.

그래서 나는 브런치 Sustain Life 작가님의 글을 참 좋아한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함께.

 






사족을 달기전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사진조공


* 그래,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까 스스로 자기 보기가 돼.

그러려면 누군가를 만나러 다녀야 할 텐데!  혼자서 이리 생각해봤자 줄 없는 낚시, 망상 일려나.

그냥.  비밀의 숲을 봤더니 마음이 흔들렸나 보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었어.
혼잣말을 가장한 소개팅 상대 가이드라인일지도! [..  ]   요즘 러시아가 남자가 귀하다고 하더라.. 
* 사진은 다 직접 찍은건데, 굿즈 이런건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올리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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