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바좁스키, 세계 최고의 해양화가로 인정받다!
러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 해양화가 중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이반 아이바좁스키(1817~1900)의 작품 2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이바좁스키는 많은 대작을 남겼고, 유럽 대회에도 출품하여 금메달도 수상한 화가입니다. 하지만, 한국분들에게는 생소하므로 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이바좁스키의 본명은 오바네스 아이바쟌입니다. 아르메니아인이어서 아르메니아식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오바네스는 아르메니아어로 요한(이반)입니다. 나중에 러시아식으로 이반 콘스탄티노비치 아이바좁스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바좁스키는 크림반도의 페오도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페오도시아는 중세 때 유럽에 흑사병을 전파한 진원지로 알려져 있는 도시입니다. 그 당시에는 카파라고 불렸죠. 크림반도에서의 삶은 화가로 하여금 평생 바다 풍경을 그리게 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요한 류드비히 그로스의 추천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황립예술아카데미(현, 레핀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재학시에 각종 대회에서 은메달과 금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이후 1840년 이탈리아에 파견되어 유럽 본고장에서 그림을 배우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파리 아카데미 협의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는 러시아 정부를 위해 해전과 전함을 주제로 하는 작품도 다수 그렸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온 아이바좁스키는 페오도시아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아이바좁스키는 자선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살아 생전에 성공하여 많은 부를 축적한 그는 고향 사람들을 위한 공공 시설을 지었습니다. 물이 없어 고생하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대형 우물을 파 주었습니다. 미술관과 도서관을 짓고, 그림학교를 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미술관과 작품들을 모두 페오도시아시에 기증하였습니다. 그는 평생에 6천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일부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관들에 소장되어 있고, 대다수의 작품은 페오도시아의 아이바좁스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번째 작품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양화가로 만든 작품입니다. 아홉번째 파도라는 그림입니다.
아이바좁스키의 작품은 낭만주의 풍입니다. 낭만주의를 이해하면 그의 그림을 아는데 도움이 되겠죠.
‘운명을 거부하는 힘은 낭만주의 예술이 좋아하는 주제이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주인공들은 고통 중에서도 영혼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잃지 않는다.’
작품을 보겠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바다 그리고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이 난파선의 잔해에 달라붙어 생존의 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따뜻한 색 톤을 띄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폭풍 앞에서 사람들은 물러서거나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고, 반대로 자연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움의 의미는 모든 자연적, 사회적 법칙에 따라 멸망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구원을 향한 인간의 의지와 영웅적인 노력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화가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844년에 비스카이 만(프랑스 서부 해안의 만)에서 실제로 겪은 풍경을 머리 속에 담아 두었다가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풍랑이 너무 쎄서 화가가 탔던 배가 침몰하여 젊은 화가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유럽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신문에 타전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를 통해 아이바좁스키는 이미 유럽에도 유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이 그림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메두사호의 뗏목(1819)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리코의 작품은 재난 앞의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본성을 드러냈으며,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린 것입니다. 반면 아홉번째 파도는 재난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상상의 산물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낭만주의 그림입니다. 아마 아이바좁스키는 프랑스에서 제리코의 그림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두번째 그림은 이전 그림과 비슷하지만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도라는 작품입니다.
파도를 그렸을 때 화가는 72살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파도의 흉용한 움직임을 그리면서 사람의 힘은 자연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납덩이 같이 무거운 먹구름 밑으로 파도가 넘실대고 있고, 심연은 이 부서진 배를 바로 삼킬 듯 하여, 선원들의 살려는 몸부림은 아무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색감은 차갑고 어둡습니다. 화가는 초기의 낭만적인 밝은 색감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해결 방법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호평을 주를 이루지만, 비슷한 플롯의 반복과 과도한 색상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아이바좁스키는 풍경이 장엄하게 보이게 하려고 과장을 한다. 그가 '일몰'과 '일출'을 만들어내는 속도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생산적인 소설쓰기와 같다." 라고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바좁스키는 비슷한 주제를 수없이 반복해 그렸습니다. 화가 한 사람이 평생 6000점이라는 엄청난 다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죠. 그러나 동시에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폭풍 속에는 황홀함이 있고, 살아있는 듯 실제적인 폭풍 묘사는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넘실대는 파도, 빛이 투과되는 물결, 무서운 하늘 등, 분명 화가는 폭풍 앞에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실적인 묘사를 할 수 있었던 화가의 상상력과 묘사기법에 대해 감상자는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비판에 대해 화가는 다음과 같이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전의 단점들을 수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같은 주제를 반복한다. 내 눈에는 그 단점들이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자연을 극복하는 힘을 묘사하던 아이바좁스키는 자연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실존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태세전환을 한 것일까요? 아이바좁스키의 말을 빌면, 말년에 그의 작품 스타일이 바뀐 것은 아마도 자기 작품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자 했던 끝없는 시도의 산물인 듯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그림이라 하더라도, 비슷한 그림을 계속 보게 되면 지루해 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해 보이는 그림 속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으며, 개개의 작품은 실제 풍랑이나 바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묘사가 뛰어납니다. 따라서 아이바좁스키의 많은 비슷한 바다 풍경 그림들 속에서 차이점을 찾아내가며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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