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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Dec 27. 2021

폴리페무스가 있는 풍경

음악이 들리는 신화적 풍경!

서양화에서 그림 제목은 아주 쉽게 지어집니다. 커튼이 있는 정물이라든지, 마을과 나라든지, 그림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일단 제목을 이해하면 그림의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죠. 오늘 소개할 폴리페무스가 있는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폴리페무스'하고 '풍경'을 알면 되겠죠? 거기에 살짝 하나만 더한다면 바로 화가죠. 그림을 화가가 그리는데 화가를 빼놓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 그림은 화가, 폴리페무스, 풍경의 순서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화가

17세기 프랑스 미술에서 니콜라 푸생(Poussin, Nicolas. 1594-1665)을 절대 빼 놓을 순 없죠. 그는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로마에서 살았다는 것은 고전주의를 좋아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17세기 서양화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전주의는 끊기지 않는 샘물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사조가 생겼다가 사라지지만, 고전주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고전에서 영감을 얻곤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부활한 인문주의는 17세기 프랑스로 자리를 옮겨 유행하다가, 결국 18세기 말에 대유행을 하게 되어 신고전주의라는 명칭까지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려는 푸생의 작품은 사조를 구분하기가 애매합니다. 흔히 푸생을 고전주의자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 유행한 고전주의는 17세기 서양화의 주류가 되지 못하거든요. 따라서 푸생은 동향 화가인 끌로드 로랭과 함께 고전주의의 명맥을 이은 화가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니콜라 푸생 1594~1665

군인이었던 푸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선택한 직업을 싫어했습니다. 18살 때 푸생은 돈없이 가출하여 노르망디의 레장들리에서 파리까지 걸어 갔다고 해요.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루브르 궁전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거기서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을 복제하며 미술을 연마합니다. 나중에는 아예 로마로 이사하여 거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죠. 로마에서 유명해지자 파리 추기경이 푸생을 프랑스로 초대해요. 루브르 회랑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지만, 다른 화가들의 시기 때문에 다시 로마로 돌아가 버립니다. 푸생은 싸우지 않고 물러서는 길을 택합니다. 여기서 푸생의 성격을 알 수 있죠. 푸생은 산책을 즐겼고, 책을 많이 읽었으며, 사색에 잠기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해요. 이런 푸생의 성격이 그의 그림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 1871 니콜라이 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푸생은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의 창시자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동시대의 또 다른 거장인 루벤스와 비교하곤 했습니다. 루벤스의 역동적인 구도와 화려한 색채가 좋으냐, 푸생의 조화로우며 조각적인 형태가 좋으냐의 싸움 이었죠.당시는 루벤스파가 이겼습니다. 하지만, 신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푸생이 옳았음이 증명됩니다. 그런데, 색채냐 형태냐의 싸움은 아마도 영원히 지속될 것 같습니다.

푸생 라파엘로 루벤스 뒤러 루벤스 until 1854 요한 구스타프 산드베르크

폴리페무스

화파 싸움에 대한 얘기는 이쯤하고요, 그림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폴리페무스는 퀴클롭스라고 하는 외눈박이 거인입니다. 그의 사랑 고백을 상대자가 거절하자 폴리페무스는 화를 내는 대신 산에 앉아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산에 앉아 팬플룻을 부는 폴리페무스를 볼 수 있죠. 사랑의 감정 덕분에 세상에 평화가 온 풍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신화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습니까?

퀴클롭스 1914 오딜롱 르동 크뢸러 뮐러 미술관


"그 섬에는 바다 쪽으로 쐐기 모양을 하고 툭 튀어나온 험하디 험한 바위산이 하나 있었다.

이 바위산 양쪽에서는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고,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는 제멋대로 날뛰는 양떼를 따라

이 바위산으로 올라와서는 꼭대기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는 했어 ..."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갈라테이아와 아키스의 슬픈 사랑 중, 이윤기역


폴리페무스는 훗날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 죽이는 거인입니다. 폴리페무스는 섬을 지나가는 배들에게 바위를 던져 침몰시키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아름드리 나무를 한손으로 격파할 만큼 괴력의 소유자입니다. 들의 사나운 짐승들도 그 앞에서는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 그가 바다의 요정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갈라테이아는 이미 목신의 아들 아키스를 좋아하는 상황이었어요. 폴리페무스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갈라테이아로 인해 괴로워 합니다. 그런데 그는 왠일인지 힘으로 그 사랑을 가로채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위산에 올라 플룻을 불며 슬픈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언젠가는 갈라테이아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것을 믿은 것일테죠. 사랑이 사나운 퀴클롭스를 길들였습니다. 그는 더이상 바위를 부수거나, 나무를 찢거나, 농작물을 짓밟거나, 배에 돌을 던져 침몰시키지 않았습니다. 폴리페무스의 음악에 매료되어 님프들은 샘으로 물길러 왔다가 머물고, 판들도 숲에서 나왔으며, 사람들은 쟁기질을 그쳤습니다. 가파른 절벽과 대칭으로 서 있는 잎이 무성한 나무는 조화로운 풍경을 선사합니다. 그 안의 모든 것이 평화롭습니다.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1627~1628 니콜라 푸생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신화적 풍경

그런데 푸생은 이 풍경을 자연에 나가서 그리지 않고 작업실에서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상적 풍경화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죠. 그의 풍경화에는 엄숙한 아름다움과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습니다. 그는 신화적인 주제와 관련된 일련의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푸생은 초기 티치아노의 화풍과 후기 라파엘로의 화풍이 절충된 ‘신화적 풍경화’라는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푸생의 명상적이고 고독한 기질을 읽을 수 있습니다. 화가는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자주 차분한 풍경이 등장합니다. 또한 거기에 신화이야기를 가미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즉 사랑이 있는 신화이야기를 음악적 풍경과 어우러지게 하여 명상적 세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감미로운 플룻의 선율이 울려 퍼지는 신화적 풍경을 떠올려 보세요. 푸생의 그림은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함께 감상할 때 더 잘 이해됩니다.

푸생(1594~1665)의 폴리페무스가 있는 풍경(1649)


이 글은 동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bvK3JllA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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