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집필 장소와 라스콜리니코프의 하숙집이 있는 골목
소설의 첫 대목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걸었던 방향과는 반대로 우리는 K 다리를 건너 S 골목으로 이동한다. S는 스톨랴르니 столярный 에서 온 것이다. 러시아어로는 목수라는 뜻으로, 전에 이곳에 목공소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스토옙스키와 관련된 골목으로 유명하다.
스톨랴르니 골목은 그리보예도바 운하에서 시작하여 그라쥐단스카야(메산스카야) 거리를 지나 카잔스카야 거리에서 끝나는 길이다. 바로 여기 18번지는 즈베르코프 저택으로 1829-1831년 고골이 실제 살았던 곳이다. 고골은 자신의 단편 '광인 일기'에서 이 집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고로호바야 거리를 지나서 메산스카야 거리로 돌아 거기서 스톨랴르니 골목으로 나가 마침내 코쿠슈킨 다리 앞의 큼직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집을 난 알고 있다.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즈베르코프의 저택이다."
광인일기, 고골 저, 김학수 역, 범조사 간
현재 고골의 이름을 딴 호텔이 즈베르코프의 저택에 들어서 있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라고 언급했던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려 보자. 도스토옙스키는 열렬한 고골의 추종자였기에, 그가 고골의 자취를 따라 이곳으로 이사왔을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고골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일까? 이곳에 위치한 식당 이름도 문학적이다. 눈에 띄는 곳은 세베랴닌이라는 레스토랑이다. 이고르 세베랴닌(1887~1941)은 소련 시대의 시인으로서 이른 바 러시아 은시대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세베랴닌은 필명으로서 '북방인'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인 1918년에 에스토니아로 넘어가서 정착하였다. 아마도 식당 주인이 세베랴닌의 열렬한 팬인 듯 하다. 이 식당은 정통 러시아 음식점이므로, 제대로 된 러시아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들어가 봐도 좋다. 다만 고급 식당이기 때문에 가격이 만만찮다는 점은 염두에 두기 바란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러시아는 고급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저렴한 편이다. 여름에는 길거리에 테이블을 준비해 놓기도 하는데, 테이블 보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책을 문진으로 쓴 것을 보았다. 식당 주인의 문학적 센스가 돋보인다.
스톨랴르니 14번지 또한 의미 있다. 당시 '올론킨 임대주택'이라 불리던 이 아파트에서 1864~1867년 도스토옙스키가 세들어 살았다. 그 집에서 '죄와 벌'과 '도박사'를 완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톨랴르니 골목의 특기할 만한 점은 5번지에 라스콜리니코프의 하숙집이 위치한다는 점이다. 자, 올론킨 저택으로 이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