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포프 궁전 그날밤 사건은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이뤄졌나!
라스푸틴은 워낙 미스테리한 인물이라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소문들이 있죠. 어떤 것은 사실이고, 어떤 것은 꾸며낸 얘기 같아요. 러시아에서 라스푸틴에 관한 미니시리즈도 만들었으니까 한번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라스푸틴 사건이 일어난 하루밤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어요.
라스푸틴 사건은 유수포프 궁전에서 일어났어요. 유수포프 가문은 러시아에서 황가 다음으로 오래되고 뛰어난 귀족 가문이에요. 굉장히 잘 살았고, 황가하고도 친해서 대대로 궁정의 요직을 차지했죠. 마지막 상속자인 펠릭스는 니꼴라이 2세의 조카와 결혼까지 해요. 그 유수포프 가문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유한 궁전을 모이카강의 유수포프 궁전이라고 하는데요. 바로 그 곳이 사건의 장소에요. 현재, 이 궁전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 코스이기도 하죠.
1914년 2월 9일, 펠릭스 유수포프 주니어 공작과 황가의 혈족이자 니콜라이 2세의 조카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 공주의 결혼식이 열려요. 유수포프 궁전 내에 이들 신혼부부를 위한 신혼집이 마련되죠. 유수포프 궁전 자체가 이미 러시아 최고 귀족 가문의 저택을 대표하는 곳이었어요. 황제의 궁전 못지 않은 값비싼 준보석과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고전주의와 동방 양식이 훌륭히 결합된 멋진 궁전이었죠. 집안 대대로 예술에 조예가 깊어서 귀족 예술을 선도했다고 해요. 이러한 궁전에 만들어진 신혼집은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펠릭스의 상상력과 재능있는 예술가들의 세련된 디자인이 결합된 우아한 곳이 되었죠.
펠릭스 유스포프와 이리나 로마노바 공작부부의 신혼집은 모이카 강변에 별도로 나 있는 소중앙현관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젊은 펠릭스는 이곳에 자신만이 은밀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사색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마련하기로 해요. 거기에는 식당으로 쓰이는 반지하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도 있었어요. 라스푸틴 사건이 바로 이 반지하 식당에서 벌어져요. 펠릭스 유수포프와 이리나 로마노바의 신혼집이 조성된지 3년 후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을 뒤흔든 미스테리가 바로 이 곳에서 발생한 것이죠.
1916년 12월 밤, 이곳에서 '시베리아의 늙은이'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며요. 이 음모를 꾸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어떻게 이 계획을 실행했을까요? 자 이제, 라스푸틴 사건의 내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펠릭스의 어머니 지나이다 니콜라예브나는 황실 가족과 사이가 좋았어요. 그녀는 종종 니콜라이 2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죠. 하지만, 1912년에 라스푸틴이 정치 문제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의 관계는 소원해져요. 라스푸틴은 이미 황실 가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었어요. 잘 알려졌다시피 라스푸틴이 기도로써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고쳐주었기 때문이에요. 라스푸틴은 점차 국정과 1차 세계대전 작전에도 관여하기 시작해요. 귀족들은 불만이 많았죠. 시베리아의 괴승이 러시아 제국을 망치고 있다고요. 이걸 방치하면 러시아는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요. 귀족들은 그 '늙은이'에 대해 수근대며 분개했어요. 이대로는 안된다, 어떻게든 없애버려야 한다고 다들 생각했죠.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어요. 그는 황실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한 사람이 총대를 매요. 유수포프 가문의 상속자인 펠릭스였습니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여 최후의 조치를 취하기로 합니다.
펠릭스의 신혼집이 라스푸틴 처결 장소로 선택됩니다. 펠릭스가 직접 꾸민 집이기에 라스푸틴 살해 계획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던 거죠. 펠릭스의 개인 공간은 두 층으로 되어 있었어요. 1 층에는 현관로비, 거울이 있는 드레스 룸, 서재 그리고 침실이 있었어요. 반지하에는 계단으로 통하는 지하 식당이 있었고요. 1916년 12월 16일, 자정 즈음 펠릭스의 의견에 동조하는 네 사람이 그 서재에 모였습니다.
군의관이자 운전사로서 참여한 스타니슬라프 라조베르트는 긴장해서 인지 문으로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수호틴 중령도 불안했는지 자꾸 창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황제의 사촌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만이 냉정함을 유지한 채 의자에 기대어 시가를 피웠습니다. 제정 러시아 국회의원이었던 푸리시케비치는 감정적이어서, 세부 계획에 강력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구요.
라스푸틴 살해 모의에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의 참여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는 황가의 혈통이었기 때문이죠. 그 또한 라스푸틴 때문에 러시아가 망조가 들었다며,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라스푸틴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펠릭스가 푸리시케비치에게 라스푸틴을 제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푸리시케비치는 격정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오랜 꿈이었다고 외쳐요. 그는 스타니슬라프 라조베르트 박사를 이 모의에 끌어 들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어요. 펠릭스가 비밀리에 라스푸틴을 집으로 초청한다. 라스푸틴이 수락하면 새벽 12시에 라조베르트 박사가 운전하는 푸리시케비치의 오픈카를 타고 라스푸틴을 펠릭스의 집으로 데려 온다. 청산가리를 넣은 차를 대접한다. 한순간에 독이 퍼져 라스푸틴을 죽이는데 성공하면, 그의 사체를 자루에 싸 도시를 벗어나 강물에 던진다. 치밀한 계획을 했음에도 거사는 거의 실패할 뻔 해요.
라스푸틴은 자정이 지나서 유수포프 궁전에 도착했어요. 정문이 아닌 옆문을 통해 지하식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반지하로 내려 갔어요. 계획에 따르면, 식당에서 차 마시는 시간은 20 분을 넘지 말아야 했어요. 그 시간에 사건이 종결되어야 했던 거죠. 나머지 사람들은 윗층 서재에서 대기하며, 반지하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해요.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차를 마시게 될 테이블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어요. 테이블에는 사모바르, 과자, 사탕이 놓여 있었고 와인과 잔을 담은 쟁반도 준비되었어요. 라조베르트는 독약을 넣은 빵 상자를 가져왔어요. 와인 잔에는 독이 묻어 있었고요.
라스푸틴은 수레국화 수를 놓은 크림색 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검은색 벨벳 승마용 바지와 하이 부츠를 신고 있었고요. 특히 머리와 턱수염까지도 조심스럽게 빗질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라스푸틴은 저녁 식사 제안을 아예 거절해요. 시작부터 계획이 삐걱거린거죠. 하지만 결국 빵은 맛보기로 합니다. 펠릭스는 그가 빵을 집어 하나씩 먹는 것을 쉬지 않고 지켜보았어요. 청산가리의 효과가 즉시 나타나기를 바라면서요. 하지만 놀랍게도 라스푸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펠릭스에게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어요. 시계는 벌써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펠릭스는 크림산 와인을 맛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요. 그는 기꺼이 술을 마시더니, 마데이라 와인도 원했어요. 펠릭스는 마데이라를 청산가리가 묻은 잔에 부었어요. 곧 끝이 올 줄 알았어요. 그러나 라스푸틴은 애호가가 와인 특유의 맛을 음미하듯 조금씩 천천히 마셨어요.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어요. 독의 효력이 없었던 거죠. 위층에 있는 공모자들이 오랜 기다림에 지쳐 지하 식당으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펠릭스는 이 상황을 타계할 계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펠릭스는 다른 손님들이 떠났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구실로 서재로 올라 가요. 펠릭스는 공모자들에게 독의 효력이 없다고 말해요. 모두가 놀라고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해요. 펠릭스는 드미트리에게서 리볼버 권총을 받아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라스푸틴은 티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펠릭스가 느닷없이 사격을 가했어요. 라스푸틴은 동물처럼 으르렁대더니 곰가죽 위에 세게 넘어졌어요. 이때 계단에서 소음이 들려왔어요. 동료들이 총소리를 듣고 서둘러 내려온 것이에요. 라스푸틴은 누운 채로 얼굴이 떨렸어요. 눈은 감았지만, 손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죠. 얇은 실크 셔츠에 크지 않은 붉은 반점이 있었습니다. 상처는 작았고 피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어요.
공모자들은 식당에 사체를 둔 채 드미트리 대공, 라조베르트 및 수호틴은 궁전을 떠나요. 펠릭스와 푸리시케비치만 남았습니다. 둘은 서재에 앉아 있었지만, 라스푸틴의 시신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불안감을 느꼈어요. 지하식당으로 내려 가서 펠릭스는 라스푸틴의 맥박을 더듬었어요. 박동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분명히 라스푸틴은 죽은 겁니다. 펠릭스가 일어서서 나가려고 할 때, 라스푸틴의 눈꺼풀에서 미세한 떨림이 있음을 느껴요. 펠릭스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어요.
갑자기 라스푸틴이 분노의 표정으로 뱀 같은 눈으로 펠릭스를 노려보았어요.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격노하고 격렬한 몸짓으로 라스푸틴이 박차고 일어났는데,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어요. 방은 거친 고함으로 가득 찼고, 라스푸틴은 커다란 손을 내리치며 펠릭스의 어깨를 잡았어요. 예상치 못한 무서운 상황에 당황하여, 펠릭스는 라스푸틴을 뿌리치고 계단을 올라 멀리 도망갔어요.
푸리시케비치는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정원으로 달려 나갔어요. 그 때 라스푸틴이 뒤뚱거리며 눈밭 위로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았어요. 푸리시케비치는 그를 따라 달리며 여러 발을 발사했어요. 총알이 라스푸틴의 등과 머리에 적중했어요. 라스푸틴은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대공, 수호틴 중령 및 라조베르트 박사가 라스푸틴의 사체를 싣기 위해 차를 타고 왔어요. 사체를 카펫에 싸서 페트로프스키 섬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라스푸틴의 시신을 다리 위에서 얼음 구멍으로 던져 버렸죠.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공모자들은 시신이 핀란드만으로 빨리 흘러내려가기를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1916년 12 월 18 일, 사체가 얼어붙은 강물에서 발견되어 수습되었어요.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였다고 합니다. 독약으로도 총으로도 라스푸틴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죠. 라스푸틴의 시신은 황제의 마을 지역 공소 지하실로 옮겨졌어요. 봄에 그를 시베리아로 이송하여 고향 토볼스크 현의 포크롭스코예 마을에 묻고자 했지만, 1917년 2 월 혁명 때문에 계획이 변경되고 말아요. 1917년 3월 10일 라스푸틴의 시신이 담긴 관은 페트로그라드로 보내졌습니다. 처음에는 숲에 은밀히 매장하려고 계획하였지만 화장이 결정되었어요.
이러한 내용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밝혀집니다. 펠릭스 유수포프가 '라스푸틴의 최후'라는 회고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함구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 망명 중에 이 책을 집필하여 그 날 밤의 사건을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한편, 푸리시케비치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 것은 군주제를 지키기 위한 모의였다며, 자신은 '로마노프 왕조와 러시아의 위신을 바로 세운 구원자'로서 고상한 역할을 맡았음을 과시하려고 했어요.
황실 가족이 '친구'요, '기적사역자'요, '신의 사람'으로 간주했던 시베리아 농민. 반대로 동시대 귀족들이 러시아에 모든 불행을 가져온 악당으로 여기는 이 기적의 치유자는 러시아 역사에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군주제 옹호자들이 로마노프 왕조를 지키기 위해 저지른 이 사건은, 오히려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시켰어요. 12월 사건 이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제정 러시아는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누가 러시아를 멸망시킨 것일까요? 라스푸틴일까요? 귀족들일까요? 그리고리 에피모비치 라스푸틴이라는 인물 자체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에 얽힌 상황도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