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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Sep 13. 2021

바실례프 “해빙”

러시아 무드 풍경화를 소개합니다.

러시아 풍경화는 서양 풍경화하고 달라요. 화가의 감정이 개입되죠. 매우 서정적이에요. 그래서 무드 풍경화라고 불립니다.


현실을 똑같이 그리는 사실적인 풍경화... 물론 멋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재현일 뿐이라는 거에요. 재현은 솔직히 사진이 더 잘 하잖아요. 그림이 사진과 다른 거는 표현 아닐까요? 심지어 사진도 표현을 얘기하는데 그림이라면 더욱 표현에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풍경화가 러시아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 무드 풍경화는 표현의 풍경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러시아의 독특한 풍경화 장르-무드 풍경화의 대가들이 있습니다. 러시아 화가 알렉세이 사브라소프(1830-1897), 이삭 레비탄(1860-1900) 같은 화가들입니다.

까마귀 날아 돌아오다, 사브라소프, 1871
영원한 안식 위에, 레비탄, 1894


굉장히 멋진 그림들이죠? 몇년전, 모스크바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에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저자 김희은 선생의 안내를 받았던 적이 있어요. 지금 김희은 선생은 한국에서 카르찌나 갤러리를 운영하며 러시아 회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는데요. 김희은 선생으로부터 무드 풍경화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죠. 무드잡는다는 말을 들어 보았어도 무드 풍경화는 처음 들었거든요. 현장에서 그 뜻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좋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그 용어는 바로 머리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갤러리 까르찌나 김희은 대표, 방문객들에게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허락을 받고 게재함)

가끔 그런 경험을 하죠. 어떤 것을 알려고 노력할 때,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를 접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바실례프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머리식힐겸 페이스북을 보는데... 김문호 사진작가님이 때마침 올린 글에 실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것을 한번 나눠 보려고 해요.


표도르 바실례프(Васильев Фёдо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1850~1873) 의 해빙입니다. 바실례프는 러시아의 자연을 드라마틱하고 풍부한 색채로 담아낸 독보적 풍경화가입니다. 화가는 1871년에 해빙 작품을 2점 그렸습니다. 첫번째 작품은 현재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에 있고, 두번째 작품은 러시아 박물관에 있습니다. 화가는 오늘 보실 두번째 작품에 첫번째 작품보다 더 따뜻한 색조를 부여했습니다. 이 작품은 1872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출품됩니다. 1870년 겨울 내내 이 그림을 그리다가 화가는 심한 감기에 걸렸습니다. 이후 감기는 결핵으로 발전하고 맙니다. 그는 러시아의 오래된 귀족 가문의 파벨 스트로가노프 백작(1823~1911)의 도움으로 얄타에서 휴양을 하였으나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873년 만 2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바실례프는 이미 16살 때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짧은 화가의 경력에 비해 많은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바실례프 초상화, 크람스코이, 1871


바실례프는 해빙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의 자연이 갖고 있는 독특한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긴 러시아는 봄이 오는 소리가 늦게 들려오죠. 이 그림은 바로 러시아에서 봄이 오는 시점을 포착해 낸 것입니다. 겨우네 겹겹이 쌓인 눈이 봄기운으로 녹기 시작합니다. 녹은 물은 웅덩이를 만들고, 웅덩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길을 진창으로 만들게 되죠. 질퍽거리고, 지저분한 거리... 해빙이 러시아의 마을에 가져다 주는 선물입니다. 무겁고 칙칙한 하늘... 쓸쓸한 보행자... 그리고 쓰러져 가는 오두막... 이것들은 희망없는 슬픔을 전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는 화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적 혼란이 반영된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싸늘한 바람이 마을을 휘감아 돌기에 봄은 아직 멀다고 느낄 즈음, 봄을 알리는 전령 까마귀 무리는 어김없이 깍깍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날아듭니다. 이렇게 바실례프의 그림에서 풍경 속의 각 요소들은 고요하지만, 내적 긴장감을 서서히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내적 긴장감! 이 그림의 핵심은 바로 내적 긴장감의 표현에 있습니다. 봄의 환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속에서 서시히 달아 오르는 생의 열기를 표현해 낸 것이지요.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렝의 풍경화는 아름답지만,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풍경화를 그린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풍경 속에 화가가 사물들을 인위적으로 배치한 결과로서 화가의 개인적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무드 풍경화는 풍경 그 자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관객들이 풍경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끔 하였습니다. 그것은 화가가 자신의 감정을 그 풍경 속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자신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빙이라는 작품에 담은 것입니다. 김문호 사진 작가는 '재현과 표현의 경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해빙, 바실례프, 1871


"네팔에서 머물던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러 재래시장 식당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밖에서는 아침 탑돌이와 시주가 한창이다. 잠시 다리쉬임을 하고 있는 순례객 노파들과 골목으로 들어서는 모자를 쓴 노인. … 나는 순간 몇 번 셔터를 눌렀다. ... 그러나 역시 그럴싸한 것은 그럴싸한 것일 뿐이다. 장면만 그렇게 보였던 것. 파일을 열어보니 내가 뭘 하자는 것이었는지, 나의 자의식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를 나는 재현이라고 본다. 여기서 나의 간곡한 자의식(혹은 내면성)이 투사된다면 나는 그런 사진을 표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가의 내적인 자의식이 투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복제일 뿐이다. 아무리 이 사진에 설명을 덧대고 추상적 단어들을 늘어놓아 붙여도 그냥 재현일 뿐이다. 역시 좋은 사진은 오랜 생각과 관찰, 그리고 사진가의 투철한 주제의식이 뒷받침되어야 나올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문호님의 페이스북(저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함)


'나의 간곡한 자의식(혹은 내면성)이 투사된다면 나는 그런 사진을 표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라고 하였는데, 저는 러시아 무드 풍경화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겨울이란 러시아 전제주의 하에서 혹독한 통치를 받는 시기를 의미하고, 해빙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고보니 이 그림이 그려진 1871년은 농노제폐지 10주년입니다. 러시아는 해방을 맞이한지 10년이 지났지만, 과연 러시아 민중은 진정한 해방감을 누리고 있을까요? 볼셰비키 혁명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되나 싶었더니, 스탈린 독재로 러시아 인민들은 그 전보다 더 큰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 때를 ‘해빙기’라 불렀습니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오랜 전제정치와 공산당 독재를 경험한 러시아 역사를 생각할 때, 해빙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이 있습니다. 바실례프는 해빙을 맞이하는 혼란스러움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러시아의 자연 속에 긴장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러시아인들이 겪어왔던 것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자, 앞으로도 겪게 될 삶에 대한 예언인지 모릅니다. 뼈에 사무치는 러시아의 겨울바람을 맞아 본 자만이 해빙이라는 단어가 주는 복잡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TH5z8IyiU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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