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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r 04. 2024

5만 원이냐 10만 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직장인의 사계 - 봄 1

  경조사가 많아지는 봄날입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조사가 많고, 따뜻한 바람이 더 불어오면 경사가 많은 편입니다. 조사는 대부분 누군가의 부모님, 빙부모님이 돌아 가시는 것이고 경사는 대부분이 본인의 결혼식입니다.


  봄이 되니 부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유독 봄에 많이 돌아가시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추운 날 장례를 치르느라 힘들 후손들을 생각하시어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얼어붙은 땅을 파기도 힘들뿐더러 문상객을 맞기에도 굳은 겨울날은 결코 도움이 될 리 없을 테니까요. 


  회사에서 경조사는 기본적인 사회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회사라는 사회도 결국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생로병사의 기본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부모님은 돌아가시며 병들어 회사를 조기에 그만두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순간순간을 서로 위로하고 축하하는 건 힘없는 직장인들이 서로 기대는 마음씀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경조사에 보내는 각종 부조금은 늘 얼마를 할까 고민이 되곤 합니다. 제가 2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정해본 법칙을 살짝 공개해 볼 터이니 선택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1. 안면만 있고 이따금씩 안부를 묻는 사이 : 5만 냥

 이건 국룰이지요. 5만 원입니다. 굳이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기에 인편을 통하거나 계좌를 알리는 경우 이체를 합니다. 큰 고민이 필요 없습니다. 혹자는 3만 원을 얘기하는데 보편적인 국민정서상 3만 원은 약간 애매할 수 있으니 2만 원 더 써봅니다. 


2. 비교적 근거리에서 자주 얼굴을 맞대는 사이 : 10만 냥

  10만 원을 기본값으로 합니다. 자주 봐야 하기에 본인의 체면도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하고 상대편 면도 세워주어야 하니 가능한 행사에 참석합니다. 물론 사원 급의 경우 5만 원으로도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급여가 오른 과장급 이상이 되면 10만 원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이 속 편합니다. 


3. 형제보다 친하다! : 20~30만 냥 but 비추

  정말 본인이 형제 이상으로 친하다고 생각하면 20만 원이나 30만 원을 경제력 여하에 따라 하시면 됩니다만 사실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직장 내의 인연이 직장을 떠나면 쉽사리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서로 부담을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아끼는 후배들의 결혼식에는 20만 원 정도를 하기도 합니다만 그다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의외의 형태로 분류하겠습니다.


4. 5만 원인지 10만 원이 헷갈리는 사이 : 10만 냥!

  가장 애매한 케이스입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인 경우가 있지요. 우선 경사는 안 가도 무방합니다. 봉투만 보내면 됩니다. 하지만 조사의 경우 가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슬픔에 빠져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기쁨이 넘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좀 더 있다고 보거든요. 


  5만 원 할까 10만 원 할까 고민이 되실 때는 사정이 허락한다는 전제하에 10만 원으로 가시는 게 속이 편합니다. 

  

  이 10만 원으로 하루아침에 관계가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상대에게는 내 마음을 충분히 전하는 효과가 있을 터이니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애매한 사이에 7만 원을 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고려했을 때 약간 비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늘 끝맛이 좋지 않았습니다. 속 시원하게 3만 원 더 써서 10만 원 하는 게 늘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직장에서의 부조는 결국 받으면 갚아야 하고 미리 보탰으면 나중에 돌려받을 확률이 큽니다. 물론 일부 얌체 같은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기회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다는 건 오히려 인간관계의 좋은 정제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습니다. 


  제가 경조사를 치렀을 때 생각해 보면 생각지도 못한 분이 큰 금액을 부조해 주셔서 놀랐던 적이 있는가 하면, 늘 친한 척을 많이 하던 근거리의 선배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분명 제 경조사 즈음에 10만 원의 부조를 했던 것 같은데 5만 원을 딸랑하는 선배를 보니 '뭐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무슨 사정이 있었겠거니 여기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서운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월급쟁이들 지갑 사정 다 뻔합니다. 거기서 거기지요. 그럼에도 사람사이에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근무 중이라는 건 다들 어른이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어른은 나이만 채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장소, 행사의 종류에 맞는 적절한 행동양식을 배운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이고, 어른으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경조사나 일반 직장생활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 기본만 지켜도 누군가를 손절하고 당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삭막한 직장생활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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