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봄(무죄를 넘어 의무다!)
예상치 못한 폭우와 폭염으로 다들 고생이 많았던 여름이 한 풀 꺾인 것 같습니다. 늘 인생의 8할 이상은 예상대로 되지 않지요. 그래도 따지고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엉뚱한 곳에 다다라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우리네 삶의 의외의 이벤트들도 저희에게 새로운 의미들을 가져다주곤 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견한 나만의 보물창고처럼 직장인들도 가끔은 일부러 길을 잃기도 하고, 내비게이션도 지도도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방황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가벼운 떠남이 없으면 어떤 새로운 것들을 삶에 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안전지대에만 머물며 열심히 쳇바퀴 돌면서 이 세상은 원래 계속 돌아가는 바퀴라고 지레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런 편협한 생각은 필히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마음의 병을 일으킬 확률도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하염없이 걷습니다. 차를 타고 가던 길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보이는 게 다르고, 자전거로 다니던 길도 걸어가면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런 게 있었나 싶은 낯선 풍경에 이 길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해지기도 합니다. 걸을 때도 누군가와 대화하며 걷거나, 휴대폰에 온통 정신이 팔려 걷는 것과 달리, 몸의 모든 감각을 완전히 열어 놓고 한 걸음 한 걸음 느껴지는 것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히 나를 걷게 됩니다.
물론 평생 방황만 하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자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이런 방랑자의 삶에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꼬부랑글씨로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라는 말이 신문지상이나 책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다들 마음 한 켠에 이런 떠돌고 싶은 욕구가 있나 봅니다. 저도 한 때는 산속에 들어가 살고도 싶었고 섬에 들어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형태의 방황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 장소가 어디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럼 깨어 있는 채로 사는 건 무얼까요? 주변에 휩쓸려 가지 않고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 기분 등에 대해 솔직할 수 있으며 흔쾌히 낯선 곳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방황을 하자고 부추기는 겁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일이라고 그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듯 주변에 휩쓸려 가기보다, 내 안의 소리를 따라 잠시 떠다니는 시간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오늘도 제 속에 숨어있는 위대한 짐승은 제게 이렇게 자판을 두드릴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정말 낯 부끄러운 글들이지만 그래도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오늘도 꾸역꾸역 미지의 세계로 또 한 발을 내디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