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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四] 내로남불

직장인의 사계 - (봄) 타인에게도 관대하게

by 등대지기

사람은 늘 실수를 하지요. 그런데 남의 실수에는 유독 열을 올리는 사람이 대개 자신의 실수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관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런 제 쫌스러운 모습에 가끔 당황하기도 합니다.




어제였습니다. 제가 결재를 해야 하는 다른 부서의 품의서에 명백한 오류가 있어 여기저기 확인하고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공공연히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나름의 여론 조성에도 힘썼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게 치명적인 오류는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마치 엄청난 사건이라도 되는 양 부산을 떨어댔습니다. 마녀사냥이라도 할 기세로 지낸 하루만큼의 시간이라니.


저라고 실수를 하지 않을까요? 이 생각을 하자 뜨끔해졌습니다. 얼마 전에도 기간이 늦어진 품의를 올리느라 여기저기 다니며 양해를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온갖 핑계들로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끄느라 납기에 늦었기에 온전히 제 잘못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유관부서에 양해를 구하러 다닐 때, 속으로 '뭐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제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다소 싫은 기색이라도 내비치는 사람에게는 사람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구요. 제 심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얼마 전에는 팀원이 올린 사무용품 결재건에 대해서 평상시 같으면 아무 말 없이 결재했을 건인데, 갑자기 '이런 것도 산다고? 내 서랍에도 남는 게 있는 것 같고, 사무용품 정리할 때 본 것 같았는데, 캐릭터가 박힌 이 쓸모없는걸?'이라는, 마귀가 씌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불렀습니다. 마귀가 말을 뱉으려는 찰나 다행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말을 하려니 뒤통수에 싸한 느낌이 들더군요. 왠지 지금 이 말을 뱉고 나면 그 친구와 관계는 골이 깊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요. 상사로서가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대한 잔소리를, 그것도 갑툭튀처럼 뱉어낸 다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캐릭터 예쁘네, 나도 이런 거 좋아하는데, 다음에는 내 것도 하나 부탁해요'라는 말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는데 다행히도 잘 피해 갔습니다.




다시 오류가 있는 것 같았던 품의서로 돌아옵니다.


하루 동안 쫌팽이 같은 맘으로 봤던 선배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 친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재의견을 달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제는 다소 화가 나기도 했고,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기도 했고 상태가 영 별로여서 제가 봐도 별로인 쫌팽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저도 일개 미미한 중생일 뿐인 것을.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에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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