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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四] 출근이 어색한 쫄보

직장인의 사계 - 봄 (연휴 후에 회사에서 맞이하는 어색함)

by 등대지기

저는 다른 이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귓불이 금방 붉어지고 얼굴도 화끈거립니다.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머리가 멍 해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발표'라는 얘기만 나오면 벌써 가슴이 뛰곤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새색시처럼 볼이 발그레 해지고 금세 겨드랑이에는 땀이 흥건합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의견을 피력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발표도 해야 되니 말이지요. 다행히도 여러 가지 툴을 활용해서 어찌어찌해 나가고는 있습니다. 발표를 잘하기보다는 발표나 프레젠테이션을 잘 못하는 것을 들키지 않는 수준입니다.


회의석상에 참석해 보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스크립트 준비도 없이 발표를 잘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겐 경이로운 일입니다. 물론 자주 하다 보면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제 안에 있는 근원적인 자아는 늘 이런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제 성격은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며 사교적이라고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말만 지나도 다시 만난 직장 동료들과 어색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늘 월요일 저녁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술잔으로 그 어색함을 희석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타인과의 생활이 어색합니다. 눈치도 많이 보는 것 같구요.


사실 저는 혼자가 좋습니다. 혼자가 되면 외로워 하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책 보고 공부하고 하는 게 좋습니다. 힘이 들 때는 혼자 쉬는 걸 선호합니다. 혼자 걷는 것, 특히 발길이 이끄는 대로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 걷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니 제가 직장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느 직장인 알콜중독자의 변입니다.


저는 우스개 소리로 '회사를 끊어야 술을 끊을 수 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제게 부족한 사교성을 메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하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덮어 놓고는, 술기운을 빌어 한껏 커다란 목소리를 내곤 하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제가 오늘따라 안쓰러워 보입니다.


우리네 직장인들의 삶이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요. 직장이라는 도무지 맞지 않는, 다른 이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걷는 듯한 하루하루를 일수 찍듯 쌓아서 한 달이 차면 잠시 경제적 위로를 받는 삶. 각자의 개성보다는 주어진 롤이 자신이 되어버린 곳. 물론 좋다 나쁘다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모두에게 각자의 삶이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무언가 석연찮은 뒷맛이 남는 건 왜일까요. 6일이나 쉬고 출근하다 보니 회사가 전에 없이 어색하고, 동료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편히 안부를 주고받기가 힘든 이 상황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이 쫄보 같은 모습도 제 자신이기에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어두고, 용기를 내어 5월의 첫 근무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오늘은 다행히 오전에 윗분이 계시지 않아서 좀 더 천천히 직장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들바람이 부는 5월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 신가요? 여러분의 하루가 편안하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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