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봄(봄바람과 함께 초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대선이 코앞입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느끼는 제일 큰 변화는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것이지요. 아침마다 선거유세 차량이 스피커를 통해 잘 들리지도 않는 큰 소리로 각 후보들의 장점을 홍보합니다.
저는 늘 북유럽식의 정치 제도를 동경해 왔습니다. 자신이 본인의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적은 수당과 봉사한다는 자부심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라는 것이 꼭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넌덜머리 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그저 나라의 곳간 빼먹는 일에만 관심이 많은, 온갖 명목을 들어 예산을 쓰는 그들을 보며 이나마 나라가 돌아가는 게 용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자 세태에 대한 한탄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봅니다. 직장에서도 선거 전처럼 허리를 숙이고 낮은 맘으로 시작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였을 때도 있고, 진급을 해서 어깨에 뽕이 들어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처음의 마음은 늘 뜨겁습니다. 굳이 첫사랑의 열병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첫 마음, 즉 초심은 늘 옳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상황이 바뀌고 함에 따라 그 마음도 차츰 식어 가기도 하고 때론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저는 이 말이 상징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다시금 되새겨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방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첫 마음만 고수하는 건, 첫사랑을 잊지 못해 새로운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유연하게 상황에 맞게 스탠스를 조절해야 됩니다. 삶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겠지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책임지고 있는 부분은 늘 첫 마음처럼 간직하고 갈고닦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관을 바꿔가면서 까지 타협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다릅니다. 직장에서 '나'를 고수하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위험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내 가치관대로 살기가 어려운 곳이지요. 그래서 올바른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일수록 빨리 회사를 떠나갑니다. 더러운 꼴, 아니꼬운 꼴을 보지 못해 꼴사나워지기 전에 꼴값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지요. 물론 세상의 법칙대로 절이 싫은 중이 떠나는 형태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조만간 그런 선배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하셨던 그 선배는 제 사수였습니다. 세밀하지는 못해 자주 일에 구멍이 생기기는 했지만 영업에는 진심이라 업체에서의 인기는 좋았지요. 실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에 반감을 가지고 회사를 나가셨습니다. 커다란 얼굴에 잔뜩 주름을 잡으셨던 어느 날 훌훌 손을 털고 떠나셨습니다. 이후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다행히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보다 10년여 먼저 직장생활을 하셨던 그분의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 다시 들어볼 기회가 생겨서 벌써 설레입니다.
봄이 와서 벚꽃이 하얗게 세상을 밝혀 주듯이 초심을 지키고자 회사를 떠난 선배의 무용담을 들으며 소주잔을 털어 넣을 생각을 하니 오늘 하루를 살아낼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제 야장을 하며 막거리를 마셨더니 마음에 봄기운이 가득 들어찬 것 같습니다. 주말을 맞아 산들바람 부는 봄날에 봄바람맞으며 봄을 한잔 들이켜는 여유 한 번 부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