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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pr 17. 2024

[職四] 색깔을 드러내지 마세요

직장인의 사계 - 겨울 [정치 성향은 속으로 속으로]

  여기저기 들려오던 '기호 1번 아무개입니다' 소리가 정말 마법같이 사라졌습니다. 확성기로 어찌나 열심히 떠들어 대던지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였는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씁쓸하다면 씁쓸합니다. 늘 선거 직전에만 잠시 등장하는 그 모습들이 한철 열심히 울다 가는 매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매미가 사실 정치인들이 진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정치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뭔 놈의 뜬금없는 정치 얘기냐 하실 수 있겠지만 회사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자연 업무 외에도 여러 대화가 오갑니다. 




  박팀장님은 진보 정당 지지자입니다. 저는 진보와 진보를 굳이 따지면 진보라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보수의 성향에 가까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박팀장님은 정치 관련 얘기만 나오면, 특히 상대편이 보수 정당 지지자이면 게거품을 무십니다. 정치적 선호도는 사실 짜장, 짬뽕에 버금가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놈이 그놈인데, 그래도 그중에 덜 나쁜 놈 뽑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투표를 하곤 합니다. 정당이라고 하는 정치인들의 모둠이 별로 곱게 보이지 않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선거 시즌이 오면 박팀장님은 신이 납니다. 얼마 전에 모 팀장님이 보수 정당에 투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책임하다', '생각이 있냐' 등의 공격을 하시는 걸 보니 주변에 있는 저도 불편해졌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비밀투표이니 알려 드릴 수 없다며 끝내 비굴하게 그 상황을 모면했지만, 저 또한 얼마든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일이니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김대리는 30대 초반이지만 거의 이대남에 가까운 친구입니다. 진보 정당에 대한 적개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온갖 욕설을 퍼붓습니다. 제가 언젠가 슬쩍 '그들이 한 이런 잘못된 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물었을 때, 다소 과한 반응을 보이며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하네요. 여러 팩트들이 확인되었고, 이미 증명이 되어 있음에도 맹신하는 모습에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야말로 맹신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그렇게 날을 세우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가만히 듣고 계시던 팀장님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정치 얘기는 그만두고 밥이나 먹자시네요. 그분은 진보정당 지지자이십니다. 그분의 몇 가지 말투나 행동들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늦은 술자리에서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기에 저는 알고 있었지요. 




  이 두 모습은 실제로 제가 회사에서 목격한 모습들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건 상관이 없지만 굳이 조직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탄압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본인이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정치 관련 대화에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속 편한 일입니다. 본인이 모시는 보스가 정치성향이 확실하다고 하면 그냥 무색무취 상태로 편안하게 듣기만 하시면 됩니다. 정치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색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지만 색이 없는 사람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심이 크게 없는 것이지요. 정치색을 과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굳이 불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다른 색을 틀린 색으로 생각하는 다소 모자란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대화를 바라는 건 약간 무리입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요. 피하세요. 조심하지 않으면 온몸에 똥칠갑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선거가 끝나거나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얼마든지 정치 관련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정치색을 드러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굳이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는 건 하수의 자세입니다. 고수는 절대 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언제고 공격받기 쉽기 때문이지요. 속 편한 직장생활을 위해 오늘 하루도 투명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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