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대지기 Apr 18. 2024

[職四] 독서 동호회 개설!

직장인의 사계 - 봄 [엉겁결에 독서동호회를 개설했습니다]

  며칠 전에 전날의 과한 음주의 흔적을 이끌고 아침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아직 술기운이 남은 상태로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 2명을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와중에 후배 한 명이 제게 요즘도 책을 열심히 읽으시냐고 물어 왔습니다. 수불석권 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늘 책을 가까이합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의 삶을 반추하고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 봄으로써 조금이나마 저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철학 관련된 책이나 위인들의 삶에 관련된 책들에서는 좋은 향이 납니다. 공통된 무언가가 근간에 흐르는, 생각 있는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의 발자취는 언제 만나 뵈어도 경이롭습니다. 


  다시 후배와의 대화입니다. 요즘도 책을 자주 보곤 한다. 지금은 이런 이런 책을 보고 있고 앞으로 이런 책들을 보려고 한다라고 간단히 설명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후배가 그럼 저한테도 책을 좀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후배도 추천해 달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주변에 제게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그들보다는 책을 자주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에도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곤 하는 모습을 많이 봐서 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책 많이 읽는 선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생활이 어떤지, 어떤 류의 책을 읽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첫 번째 후배는 마음을 좀 다스리고 싶다고 했고, 두 번째 후배는 뭔가를 좀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고 알려 주겠다고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동네 산책을 하다가 문득 두 후배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이 생각나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데리고 회사로 향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려 하는 후배에겐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가의'를, 무언가 해보고 싶어 하는 후배에겐 구본형 선생님의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를 쥐어 주었습니다. 책을 주고 사라지는 저를 불러 세우고는 그 친구들이 얘기합니다. '같이 독서동호회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말이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럴싸합니다. 제가 가진 작은 습관을 공유하고, 조금이나마 책을 많이 본 제가 부족하나마 가이드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대략 13명의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 지원팀에 개설 품의를 올렸습니다. 지원팀장님과 사전에 협의를 완료했기에 개설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나름 마당발입니다. 여기저기 적재적소에 협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 처리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동호회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매주 서로 진도 체크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식사하면서 회포 푸는 시간도 잡아 보려 합니다. 1년 동안 12권의 책을 읽으면서, 동호회에서 오갔던 대화 내용들을 엮어 '우리의 이야기'라는 문집을 발간해 보려는 야심 찬 계획도 있습니다. 뜻한 대로 다 되지는 않겠지만 첫 발을 엉겁결에 떼어놓은 이 일이 왠지 저를 좀 더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더 근사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행복한 향기를 풍기는 건 저만의 행복한 착각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은 더 행복해진 느낌이 드네요. 


  후배들 덕에 12권의 책은 읽을 것이고, 같이 얘기해야 하니 더 열심히 읽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도 동호회의 취지나 활동방향이 좋다며 책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네요. 졸지에 동호회 회장이 되어 버려 마음은 무겁지만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들어 1%나마 더 행복해진 것 같네요. 


  저는 동호회 명을 '책이랑'으로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책 읽고, 이야기하는 낭만이 있는 동호회라는 뜻이라며 부가 설명도 했습니다. 이런! 후배들이 질색팔색을 합니다. 그런 70년대 감성으로는 회원유치가 어렵다나요. 제가 70년대에 태어났으니 무슨 산악회 이름 같은 아이디어 밖에 더 나오겠냐며 항변했지만 절대 안 된다는 후배들의 말에 그럼 뭐가 좋겠냐고 했더니, '부킹닷컴'으로 하자고 합니다. Book + ing의 부킹으로 책과 함께 가는 뜻이라고 합니다. 멋진 이름인 것 같아 그 이름으로 동호회명도 정하고 사내 게시판에도 올렸습니다. 그렇게 두 후배와의 뜻하지 않은 대화로 사고를 제대로 쳐버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동호회 생각을 하면 걱정보다 따뜻한 미소가 먼저 지어지니 퍽이나 잘 친 사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작가의 이전글 [職四] 색깔을 드러내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