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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l 08. 2024

[職四]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

직장인의 사계 - 겨울(세상은 늘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짧은 직장생활이지만 삶은 늘 저를 상의도 없이 엉뚱한 곳에 던져 놓곤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걸 보니 영 나쁘기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원치 않는 곳으로 던져질 때의 기분은 늘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어딘가 늘 나름 괜찮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하는 걸 보니 제 편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첫 직장을 어렵게 잡고 막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을 때 폐결핵 판정을 받고 20대의 저는 그렇게 입사취소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첫 직장 아닌 첫 직장에서 퇴출당했지요. 같이 하고 싶지만 입사 조건에 미달한다는 문자와 함께 첫 실직을 하게 되었고 1년여 치료에 전념한 후에야 다시 새로운 회사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약 1년간 열심히 활약하며 '직장'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열심히 배울 무렵 회사가 도산한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팀장님을 포함한 전 직원이 동요하였고 누구 하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으로 보지 않는 상황이 되어 회사는 온통 잿빛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이미 조직은 와해되기 직전의 모습이었고 낮에는 누구 하나 사무실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울분을 토하기 위한 낮술전선에 빠져 들어 있었지요.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다들 뾰족한 방법이 없었고 모두들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었는데도 항상 한기를 느꼈습니다. 내 삶은 왜 곧게 뻗지 못하고 자꾸 굽어 가야만 하는지 하늘이 야속하기만 했지요. 


    그러다 갑자기, 정말 불현듯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삶의 새 역사를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났습니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저 영어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고, 노력하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근자감으로 미국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받기 어렵다는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지요.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즉 완전히 파산해서 실직자가 되기 전에 비자를 받아야 수월하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비자받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절차를 확인하고 서류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살겠다는 저의 의지로 인해 즐겁기만 했고, 벌써 빌게이츠라도 된 양 우쭐한 기분까지 들곤 했습니다. 동기들에게도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겠노라 호기롭게 얘기하곤 했지요. 20대의 젊은 혈기에 저는 그렇게 엉덩이가 들썩이는 날들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마쳤음을 확인하는 서류인 주민등록 초본을 떼었는데 제 주민번호 뒷자리가 '2'로 되어 있었습니다. '에이 설마'라는 생각으로 다시 확인했는데 정말로 여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초본상으로는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은 모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지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기존에 수기로 작성된 문서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흔히'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빠른 작업을 위해 불꽃 타자를 날렸을 지라 숫자 하나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손 쳐도,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걸러졌어야 하는데 , 일어나지 않아야 할 웃픈 실수가 발생하였습니다. 등록을 한 기관에 확인하여 보니,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행정소송이 필요하고, 대략 몇 개월 정도가 소요되며, 정확한 일정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미국행 프로젝트는 엉뚱한 곳에서 틀어져서 결국 '가지 못한 길'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국행이 좌절되어 더욱 우울하게 살던 어느 날 대학 동기의 전화를 받고 입사 지원하여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으니 도무지 뭐가 좋고 나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늘 삶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삶의 불확실성이라는 친구는 여지없이 좋고 나쁨 없이 불쑥 제 삶에 끼어들곤 했습니다.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차들처럼 그렇게 무례하게 제 삶에 갑자기 들어오곤 했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삶은 참 많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 같은데 결국 나쁜 일도 있고, 나쁜 일이 벌어졌는데 결과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이 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고 나쁘다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라기보다는 그저 일이 발생한 그 순간의 짧은 반응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헬렌켈러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하지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느라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믿음으로 상황에 대처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아픔과 시련이 결국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한 저 위에 계신 분의 인도라고 생각하면 맘이 한결 편해지겠지요. 


    자 이제 시시각각 다가오는 기회들을 맞으러 나갈 시간입니다. 위기건 기회건 모두 관념적으로 만들어 냈기에 세상에는 그저 어떤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만 있을 뿐입니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데 걱정하면 뭐 할까요. 좀 더 우아하게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운동이나 해 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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