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대지기 May 24. 2024

[職四] 출근길에서 만나는 이들

직장인의 사계 - 봄 [지하철에서 자주 마주치는 반가운 동행들]

    저는 보통 출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거의 매일 같은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다 보니 지하철이 들어올 때 정겨운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지인들이 생겨납니다. 말 그대로 알게 되는 사람들이지요. 저는 총 3가지 노선의 지하철을 탑니다. 2번 갈아타는 여정이지요. 그럼 그 여정에서 뵙는 반가운 얼굴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우선 첫 번째 역에서 늘 저와 함께 타시는 여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곱게 차리시고 직장으로 나서는 모습을 마주치곤 합니다. 언젠가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다른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분당선 지하철에 오르면 거의 매일 만나는 반가운 친구가 있습니다. 행동이 다소 어눌해 보이고 조용한 지하철에서 혼잣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뇌가 약간 아픈 친구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게임을 하던지 그 진지한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친구를 저렇게 혼자 지하철 타고 다니게 하기 위해 부모님들은 얼마나 맘 졸여가며 노력하셨을까. 노심초사 고생하셨을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 떠 올라 가슴이 찡해집니다.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멀쩡한 아이도 키우기 힘든데  아픈 부분까지 있는 아이를 키워내신, 그것도 저렇게 훌륭하게 독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신 부모님들께 정말 존경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 갈아타야 하기에 바쁘게 움직입니다. 두 번째 맞이한 3호선을 타기 위해 플랫폼에서 만나는 분은 대략 세 분입니다. 골프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신지 늘 한 손에 아이언을 들고 다니시는 중년 신사 분과, 저와 비슷한 연배의 보고만 있어도 차분함이 느껴지는 여성분, 그리고 왠지 꼰대 이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정말 딱 봐도 의지가 정말 강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분이 계십니다. 서로 인사만 나누지 않을 뿐이지 이미 이웃사촌입니다. 


    지하철이 왔는데 이 분들이 다 오시지 않으면 제가 다 불안합니다. 혹시나 이번 차에 못 타시면 어쩌나 조바심도 나고요. 지하철이 문을 닫기 전에 딱 맞춰 탑승하시면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저도 편한 맘으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3호선 지하철에 오르면 매일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저보다 먼저 탑승해 계시는 분인데, 늘 정말 열심히 화장을 하고 계셔서 제 눈길을 끌었나 봅니다. 수수하게 생기신 워킹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 오는 분입니다. 출산의 흔적인지 약간 후덕한 이미지가 있으시고, 기초화장부터 색조화장까지 그 짧은 10여분 동안 어찌나 정성을 다하시는지 그 집중력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일전에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걸 두고 말들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해도 된다는 분과 볼썽사납다는 분들이 대립하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삶이 팍팍하니 그 정도의 여유는 서로 두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면, 그 정도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겨 날까요. 우리 화장의 달인분, 어젯밤에 잘 주무셨는지 아주 화사하게 화장이 잘 먹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제 얼굴도 아닌데 저도 기분이 덩달아 밝아집니다. 


    세 번째 지하철입니다. 5호선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주 뵙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앞의 두 지하철 노선에 비해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인상 깊게 관찰할 분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사 가서 못 뵙지만, 저희 회사 직원분을 자주 만나곤 했었지요. 서로 어렴풋이 안면만 있었지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그 당시 보던 책의 도움을 받아(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저를 부추기는 책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엄청난 기적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늘 타인을 많이 신경 쓰고, 눈치도 많이 보고, 머뭇거리는 성향이 강했기에, 저에게는 이 '낯선 이에게 인사하기'가 큰 도전과제였습니다. 그 이후로 종종 만나 뵙던 그분과는 이제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의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나 봅니다. 새로운 시도는 늘 제게 배울 것들을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목적지 역에 내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봬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역에서 이제 출근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는 분들입니다. 저도 늘 비슷한 시간 대에 회사에 도착하고, 그분들도 늘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을 하다 보니 잦은 빈도로 마주칩니다. 오늘은 바빴는지 머리도 체 말리지 못해 제가 오히려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워 보이는 여학생과, 어두운 표정이지만 진지함을 잔뜩 품은 아저씨도 모두 뵈었으니 이제 제 출근길이 온전히 완성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듯 출근길에 여러 분들을 만나 뵙습니다. 제가 이 분들을 의식하고 있듯이 저분들도 저를 의식하고 있으리라 어렴풋이 짐작해 봅니다. 흘끔흘끔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소심한 우리네 현대인들의 마음 나눔에 아침부터 따뜻하게 시작해 봅니다. 


    올해 안에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하나 생겼습니다. 방금 제가 나열한 분들에게 작은 초콜릿 같은 작은 선물을 정말 뜬금없이 드리는 겁니다. D-Day를 정해 놓고, 그분들을 떠 올리며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미친놈처럼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선물을 드리는 거지요. 저의 이런 엉뚱한 행동이 지구의 온도를 0.1℃라도 올릴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 [職變] 듣보잡을 바라보는 시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