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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y 21. 2024

[職變] 듣보잡을 바라보는 시선들

직장생활의 변곡점 - 중국으로의 길을 떠나는 즈음에서의 배움

지금 여기는 : 1년 차,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현재  


    그렇게 저는 중국 상하이로의 주재원 근무를 명 받았습니다. 인사발령이 떴으니 이제 정말 빼박인 거죠. 새로운 문을 또 덥석 그렇게 열어젖혔습니다. 




    발령이 나고 주변의 반응을 스캐닝해보니 역시나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어서 굴러 먹던 개뼈다귀 같은 놈이 갑자기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하니 '뭐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요즘 주재원 대상 분들이 느끼기와 는 다르게 해외 주재원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어렴풋이 남아 있던 시절이기에, 좋은 보직으로 간 다는 것에 기존 조직의 분들, 특히 과차장 이상급에서 이런 반응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간다면 계속 팀에 있던 XX가 가야지 쟤는 뭔데 보내냐라는 말이 제게 들릴 정도였으니 그들에겐 다소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개차반으로 유명하던, 밀어내기 지시는 기본에, 회사 주유카드로 자신의 차에 기름을 채워대고, 심심하면 쌍욕을 하던 기본도 안 된 잡스럽던 모 부장께서는 '무슨 듣보잡을 보내고 그러냐'라며 제가 앉아있는 면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다지 강하지 않던, 물론 지금도 안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불안정하던 시기였기에, 이런저런 얘기가 참 듣기 싫었습니다. 속으로는 '병신들 육갑하고 있네'라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지요.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지라 어느 날인가는 '내 자리가 아닌데 욕심을 낸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나름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오래 했었고 중국어 실력도 나쁘지 않았기에 제 객관적인(?) 판단으로는 제가 적임자이긴 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훗날 알게 된 바에 따르면 그 사업부의 오랜 정통성에 비춰보면 저같이 외부에서 온 '듣보잡'들은 닥치고 구석에 처박혀서 조용히 시키는 일이나 해야 했더라고요. 그런데 철 없이 해 보겠다며 덥석 기회를 물었으니 그들의 눈에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새로 입사를 하고 1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10년여 직장생활을 하고 과장으로 입사한 저는, 이직을 하기 위한 공백으로 인해 생활패턴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출근만 하면 피곤한 날들이 지속되었지요. 그날은 여느 때 보다 더 힘들어 점심시간에 식사 후 30분 여가 남아 자리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건방지게 의자를 젖히고 자지도 않았고 꼿꼿한 의자에 기대어 잠시 졸았지요. 그렇게 꿀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일과를 시작하고 있는데 같은 팀 동료가 절 부르더라구요. 옆팀에 있는, 1년 정도 선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모 과장께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잠을 자냐며 보기 안 좋다고 했다더군요. 저는 기가 찼습니다. 10년 정도 선배면 뭐 모르겠습니다만, 같이 꼬꼬마 시절 겪었던 짬밥도 비슷한 양반이 그런 시선을 보낸다는 게 그 순간은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제 머리를 치며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존 조직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저를 굴러온 돌이라 여겼기에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도대체 어디서 굴러 먹던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조직에 해가 되는 건 아닌지, 혹시나 엉뚱한 짓을 하지는 않는지 경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일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합니다. 저도 조직에 있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비슷한 경계나 간 보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사람들에겐 상대방을 만나면 언제나 간을 보고 싶은, 본인과 그릇을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그런 그들에게 거침없는 제 성격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팀원들과 잘 지내는 모습은 더 보기 안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의 직에 엉뚱한 놈이 하는 영역표시가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요. 지금 정도의 멘탈과 마음공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더 겸손해지고 자중했을 터인데, 그 당시의 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여전히 '개과'였습니다. 사람이 되기에는 거리가 먼 '上개과'였습니다. 그다음 날도 물론 점심에 잤습니다. 의자도 좀 더 젖히고 더 편하게 잤습니다. 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지냈습니다. 이미 한 번 쫓겨나 봤던 터라 별로 두려울 게 없었던 걸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존 조직의 그런 배타적인 시선을 뒤로한 채 저는 상하이로 떠났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조금도 있었더라면 그들과 불꽃이 한 번은 튀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후일담이지만 조직문화가 거지발싸개 같았던 그 조직은 현재 제가 열심히 경영개선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 관습을 따르다 보니 조직 전반적으로 부실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방만하게 운영되어 오던 인프라 등을 정리하며 머리가 지끈 거리긴 합니다만, 그 당시의 그런 문화들이 싸 놓은 똥들을 제가 직접 치우다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에 제가 받았던 차가운 시선의 반대급부로 더 열심히 조직을 청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새로 온 이와도 사이좋게 지내자입니다. 사람이 사람구실 하면서 세상을 살기 위한 지혜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다 배웁니다. 그걸 잘 실천하는 사람은 사람 구실하고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는 이는 똥냄새 풍기는 진상으로 등극하는 것이겠지요. 잠시 놀러 온 이곳에 굳이 짙은 똥내를 풍기고 사라질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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