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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y 29. 2024

[職四] 탕비실 앞에서의 교훈

직장인의 사계 - 봄(아침 차를 준비하다가 깨달음. feat 상무님)

    우연히 정말 우연히 탕비실에 오늘 하루 일용할 차를 준비하러 갔다가 다른 사업부 사업부장님이신 상무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저도 일찍 다니는 편인데 그분도 늘 이른 아침부터 열정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일찍 일어나는 새들의 짧은 인사말에서 깨달음이 있어, 그 온기가 식기 전에 남겨 놓고자 합니다. 




    아래는 상무님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상무님 : 일찍 나왔네. 사업부 일등이야. (저벅저벅 커다란 발소리와 함께 웃음을 만면에 가득 담으시면서) 

나 :       예 안녕하십니까? 커피 준비하러 오셨어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윗분에 대한 비굴모드)

상무님 : 요즘 팀 2개 맡느라 힘들지? (최근 수출팀장의 퇴사로 제가 겸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 :       쉽지는 않습니다. 상무님.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둘이라니요.  (나름 겸손 모드)

상무님 : 그래 힘들어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니 기회로 삼아라. (여전히 웃음)

           보통은 한 팀 제대로 맡기도 힘든데, 두 개를 동시에 맡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니.

           그릇 키운다고 생각하고 해 봐,  사업부장 같은데. 허허

           거기에 팀 서너 개 추가하면 사업부장이니까.

나 :      ........



    멍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동안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새로운 기회니 뭐니 했지만 귀찮기도 했고 물리적으로 버겁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측면까지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더 큰 안목을 가진 선배님의 통찰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나 봅니다. 상무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두 개 팀의 팀장을 겸직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사업부의 기획팀을 맡고 있다 보니 일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데다, 저와 저희 팀원들의 성향상 자가발전 마니아 들인지라 일을 만들어서 하곤 합니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루틴 한 업무 외에 프로세스 개선이나 경영개선 활동을 적지 않게 수행하고 있어 늘 여러 보고서나 의사결정해야 할 것들로 치이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제게 팀원이 추가되고 업무가 추가되었습니다. 솔직히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등바등 억지로 하드캐리하고 있었는데 일을 추가하다니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어디 조직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있을까요. 점심메뉴 하나도 제 맘대로 못하는 데 말이죠. 그렇게 제 의지와 무관하게 두 개 팀의 팀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상무님의 말씀을 듣고 관점을 바꿔 보니 뭔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팀 특성상 사업부 전반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회사의 상위 부서들과도 소통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제가 수출팀을 맡으면 그만큼 타 부서와 협업을 하기에 기존 팀장보다 유리합니다. 기존 팀원들과 수출팀원들을 섞어 놨더니 알아서 서로 돕고 협업을 하기도 하더군요. 저를 비롯한 여러 관점이 섞이다 보니 기존 틀의 확장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바탕이 좀 더 넓은 것 같습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메리트는 시간의 배분입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늘 바쁘다 보니 역설적으로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만 하게 됩니다. 사소한 것들은 모두 위임하고 어지간한 결재 문서는 사람 이름을 보고 승인합니다. 대부분의 팀원을 신뢰하기에 믿고 누릅니다. 중요한 것들만으로 하루를 짜도 시간이 빠듯하니 잡스러운 것들은 기웃거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 삶의 농도가 짙어졌습니다. 야근도 늘고 주말에도 가끔 나와야 할 정도이긴 하지만, 이런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작은 보상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하던 대로 차를 준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짧은 시간의 만남을 통해, 또 새로운 사고의 방식을 배운 것 같아 하루 일을 다 한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퇴근하고 싶어 지네요. 뜬금없이 말이죠. 오늘도 딱 한 걸음 앞으로 내 디딘 것 같아 상쾌하게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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