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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y 28. 2024

[職四] 노라조의 형을 듣다 그만

직장인의 사계 - 겨울(노라조의 '형'을 듣다 사무실에 눈물을 흘리다)

    최근에 그룹에 올라갈 중요한 보고서가 있어 야근도 많았고 또 남의 밥그릇을 찰 일이 생겨 영 맘이 신산했습니다. 디테일한 수정 작업이 필요한 상황인지라 집중을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라조의 '형'이라는 노래를 틀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유튜브에서 '형 5번 반복'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플레이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사달이 나버렸습니다. 주책없이 눈물샘이 터져 버린 겁니다. 모두가 근무 중인 주변에 대략 30여 명이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조직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늘 힘들었나 봅니다. 일을 맡으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해내는 스타일인지라, 그 과정에서 맘이 상하고 생채기가 나고 있었는데도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제 자신한테 미안해졌습니다. 조직을 떠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배우는 과정이라 여겼는데 그 과정에서 뜻 대로 되지 않고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작은 스크래치가 났나 봅니다. 작은 스크래치라 여겼는데 자꾸 쌓여서 마음의 피로도가 높아져 결국 임계점을 넘어 둑 터지듯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오후 3시의 사무실에서 책상에 놓인 두 개의 모니터 뒤에 숨어 소리 죽여 그렇게 10분여를 울었습니다. 외롭고 힘들었나 봅니다. 속은 시원했습니다. 힘든 감정을 그렇게, 50에 가까운 나이지만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사내가, 사무실 구석에서 누르고 눌러 울어 냈습니다. 적지 않은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다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한 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댓글을 보니 많은 분들이 저처럼 이 노래를 듣다 눈물을 흘리셨다고 해서 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만의 유난한 아픔이 아닌, 저와 같이 걷는 모든 이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힘들게 버텨내고 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도무지 마음의 평화는 언제쯤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참 어렵기만 합니다.


    한 번은 다 비워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꾸 미뤘더니 이런 망측한 상황이 발생해 버렸네요. 작년 말이었습니다. 20년여 직장생활을 하며 다 털어내지 못한 마음속 찌꺼기들을 털어내려 10일간의 명상 코스를 신청했었지요. 그런데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과 겹쳐 눈물을 머금고 명상코스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청소의 과정을 온전히 치르지 못해서 아직도 늘 불안 불안합니다.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괜찮겠거니 했지만 사실 전혀 나아지지도 괜찮지도 않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2주간 저를 괴롭혔던 그룹 보고서 덕분에 제 마음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다행입니다. 매일 배운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하는 직장생활인데도, 전혀 괜찮지 않은가 봅니다. 오늘은 제 속의 힘든 저에게 다정한 손길을 건네야겠습니다. 점심시간에 근처 서점에 들러 땡기는 책 한 권 모셔와야겠습니다. 그 책 빈 공간에 오늘의 마음을 적어 두고선, 그 책을 볼 때마다 제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지금 힘든 감정이 올라오신다면 아무 생각 없이 '노라조의 형' 한 곡 땡겨 보시는 건 어떨까요. 통속적인 가요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철학책 보다 더 훌륭하게 제 맘을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제 귀에는 노라조 형님들의 목소리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며 저를 쓰다듬어 주고 있습니다. 오늘하루 감사히 살아야겠습니다.




형(兄)  -노라조-


삶이란 시련과 같은 말이야, 고개 좀 들고 어깨 펴 짜샤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 보니 괜찮더라. ㅠㅠ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바람이 널 흔들고 쏘나기 널 적셔도 살아야 갚지 않겠니 ㅠㅠ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ㅠㅠ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세상에 혼자라 느낄 테지 그 마음 형도 다 알아 짜샤

사람을 믿었고 사람을 잃어버린 자 어찌 너뿐이랴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ㅠㅠ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세상이 널 뒤통수쳐도 쏘주 한잔에 타서 털어버려

부딪치고 실컷 깨지면서 살면 그게 인생다야 넌 멋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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