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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l 18. 2024

[職四] 다들 고만고만하다

직장인의 사계 - 겨울 (너와 내가 별반 다르지 않아 살만한 세상)

    주변을 보면 다들 참 잘난 것 같습니다. 회의시간에 크립트 없이도 유창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여러 번 연습해서야 비슷하게 흉내 내는 수준인데 자료를 대충 보고도 척척 발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 자신이 초라해지기까지 합니다. 


    보고서는 또 얼마나 잘 만드는지요. 좌우여백 따져서 제가 봐도 읽기 좋게 잘 만들어 냅니다. 제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고서는 늘 뭔가가 부족합니다. 20여 년 직장생활을 했는데도 이놈의 보고서는 늘 제 맘을 따라주지 않습니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들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 지요. 다들 왕년에 좀 노셨는지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를 보여주십니다. 저도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우선 제 자신이 불편합니다. 혼자 부르는 건 좋아하지만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아직도 늘 떨리고 두려운 일입니다. 


    가끔 저녁자리에서 주변 동료들한테 저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술을 먹어도 안 취하냐?'

   사실 저는 거의 매번 제정신으로 집에 간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느냐?'

     한 달에 잘해야 대여섯 권 읽는 수준이니 그냥 취미로 사부작 거리는 건데 말이죠. 

    '어떻게 일 처리를 그렇게 잘하느냐?'

    사실 저는 늘 어렵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일들을 쳐내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어쩜 그리 여러 사람과 잘 지내냐?'

    마음공부로 나아지긴 했지만 저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아등바등 잘 지내는 척할 뿐인데 말이죠.


    이렇듯 타인을 보면 너무나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린 세상에서는 늘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남과의 비교'가 불행으로 가는 급행열차입니다. 왜냐하면 끝이 없을뿐더러, 저 위의 제 사례처럼 전혀 사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들 나름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러울 정도로 완벽해 보이던 그 누군가가 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나만 왜 이럴까라고 조바심 내며 생각하는 건 이런 비 내리는 장마철에 좋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안 그래도 우울한데 말이지요.


    무섭게 비가 오고 낮이 온통 밤처럼 시커멓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잠시 가려 있을 뿐이지요.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은 미소와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음에 잠시 낀 구름들 때문에 너무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고 우리 마음에도 먹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넉넉한 햇살이 방긋 모습을 드러내 환하게 비출 테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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