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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l 17. 2024

[職四] 5천 원의 행복

직장인의 사계 - 봄 (길거리에서 배운 행복의 길)

    어제는 다른 부서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나이 차이는 적게는 10살에서 많게는 20살에 가까운 친구들이지만 제가 편하게 절친이라 부를 정도의 막역한 사이입니다. 일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술자리로 향하는 길에 '도와주세요'라고 삐뚤빼뚤 써 놓은 푯말을 바닥에 두시고 옆에 앉아계신 분이 있더군요. 연세는 70 정도가 되셨을까 싶은데 언뜻 봐도 배가 많이 고파 보이셨습니다. 


    저는 회사라는 곳에 몸을 담고 있고, 팀장인지라 제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법카로 사내에서 술 한잔 할 정도는 되는 지라 배가 고프지는 않습니다. 여기저기 술자리가 많아서 고기니 회니 자주 먹고 다니다 보니 뭐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배불리 먹고 다니는데 길거리의 어르신을 뵙고 나니 맘이 영 불편했습니다. 


    사실 점심시간에 동네 순찰을 다니면서 자주 뵙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는 휴대폰만 들고 다니는 지라 현금이 없어 늘 맘이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저녁 자리를 가는 와중인지라 지갑도 있고 다행히 현금도 좀 있습니다. 얼마 전 제 직속상관이신 상무님께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와중에 제게 '혹시 현금 있냐?' 그러시더군요. 담배를 사셔야 하는데 지갑을 안 가져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체크카드로 담배를 사 드리고는 사무실에서 5천 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원래 지갑에 5천 원은 잘 키우지 않습니다. 만 원짜리와 5만 원짜리만 데리고 다니는데 약 일주일간 제 지갑에 계셨던 이 5천 원이 늘 어색했습니다. 애초에 이 5천 원은 이 분께 드리기 위해 제 지갑에 잠시 머물렀나 봅니다. 


    길거리의 어르신께서는 비도 많이 올 것 같고 하니 막 바구니 등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급해서 아저씨께 얼른 5천 원을 돌려 드렸습니다. 돈이란 놈이 원래 돌고 돌아서 돈이지 않습니까? 원래 제 것이 아니었으니 냉큼 돌려 드립니다. 저는 어제 좋은 친구들과 기분 좋게 3차까지 마시며 그득히 취했습니다. 5천 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 아저씨께서 쏘주 2병은 사 드셨을 터이니 저와 자리만 함께하지 않았지 같이 마신 거나 진배없습니다. 


    혹자는 길거리에 계시는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 그분들이 자립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며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다가,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이런 요상한 세상에서, 지친 분에게 내미는 작은 도움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 자체가 저는 내키지 않습니다. 제가 늘 주창하는 낭만이 흐르는 세상,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세상에서는 잠시 쉬어 가는 사람도, 열심히 뛰는 사람도 모두 소중하니까요. 


    저에게 잠시 머물다 가는 돈을 나름 기분 좋게 쓸 수 있게 해 주신 아저씨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장마철에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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